강아지와 예정론
어떤 이는 아담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로 인해 탄생한 모든 인류 역시 하나님의 자녀라야 맞습니다. 선택된 일부 자녀가 아니라 모든 인류를, 사람 아닌 모든 생명, 나아가 만물을 하나님이 택하시고 탄생시킨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자녀 중에서도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자녀들이 생기는데 그 책임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 고합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라 구원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멸망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집 강아지 네루는 예배드리기를 좋아했습니다.
가정 예배에도 참석하고 특별히 구역 예배를 드릴 때 좋아합니다.
"네루야 예배드리자"
라고 하면 제 집에 있다가 어슬렁어슬렁 내 옆에 와 앉습니다.
찬송가를 부르면 네루도 따라 부릅니다.
앞다리를 들고 꼿꼿하게 일어서서 "오오~ 오오~"하고 찬송을 부릅니다.
찬송이 끝나고 기도 시간이 되면 네루도 엎드려서 기도 합니다.
설교 시간에는 옆에 앉아서 얌전하게 설교를 듣습니다.
주기도문을 외우고 예배가 끝나면 제집으로 돌아갑니다.
참으로 기특한 강아지 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강아지가 신령한 강아지냐?
그렇지 않습니다.
발람 선지자의 당나귀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다고 해서 신령한 당나귀가 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동물에게는 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오직 사람에게만 영을 넣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유일무이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예정하신 데로 강아지로 태어나지 않고 사람으로, 사람 중에서도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강아지로 태어나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내 의지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과 같이, 내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 받은 것은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총입니다.
예수님의 예화에 곡식과 가라지 비유가 나옵니다.(마13:25-30)
가라지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곡식이 될 수가 없습니다. 처음부터 곡식으로 심어져야 합니다. 곡식으로 지음 받느냐 가라지로 지음 받느냐는 것은 곡식과 가라지의 의지나 행함으로 인한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있습니다.
곡식이 알곡이 되느냐 쭉정이가 되느냐는 곡식으로 태어난 이후의 행함의 문제입니다.
나무와 열매의 비유도 있습니다.(마7:16-20)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나쁜 나무는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누가복음 13장 6절-9절에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비유가 나옵니다.
가시나무에게 무화과 열매가 없다고 책망하신 것이 아니고 무화과나무로 자라면서 무화과 열매를 맺지 못했다는 책망입니다.
무화가 나무가 되느냐, 가시나무가 되느냐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있는 것이지 나무가 선택할 문제가 아닙니다.
무화가 나무로 심겨졌는데도 무화과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행함이 없는 교인과 같은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의 결과 이고 구원 받은 사람이 열과 성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성도교회 원로목사 예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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