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지식

[스크랩] 제발 바르게 전하시고 바르게 믿으세요.

끝까지주를위해 2011. 4. 10. 21:10

제발 바르게 전하시고 바르게 믿으세요.

 

한국교회 강단에서 외쳐 되는 대부분의 설교 내용이 기복설교가 대부분이다.

구약의 곳곳 구절을 인용하여 부와 출세 건강을 준다는 기복을 전하는데 여념이 없다. 한국 사람들의 기질에 맞는 건지 아니면 그래야 성도들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지 아니면 정말 신학교에서 그렇게 배웠는지 알 수 없지만 구약을 읽어놓고 때론 신약을 읽어 놓고 기복을 전하기에 열을 올리는 것이다. 나는 신학도 안했고 그렇게 성경에도 박식하지 않다. 그러나 수많은 설교를 듣고 주위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또 성경을 보아 내가 느낀 것을 올리고자 한다.

 

과연 구약의 복의 개념과 신약의 복의 개념이 같은가? 이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해보았다, 그런데 그것은 다른 것이다. 구약적 복의 개념은 현숙한 아내를 얻고 많은 재물을 가지고 크나큰 명예를 가지는 것이 구약의 복의 개념이다. 그러나 신약의 복의 개념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보아도 예수님이 하신 기도와 가르침에도 구약적 복의 개념을 찾을 수가 없다. 도리어 청빈하셨고 머리 둘 곳도 없이 사셨고 제자들 역시 무소유로 사역하시다가 최후에는 대부분이 순교로 생을 마감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을 그렇게 잘 믿어도 오늘날 제자들만큼 잘 믿는 분이 계시는가? 그런데 제자들은 부를 누리지 못했고 예수님의 제자로서 수많은 어려움을 당하다가 가진 것 없이 이 세상을 떠나셨던 것이다. 오늘날 설교 가들이 말하는 그런 복을 누린다면 사도들은 어마어마한 부와 명성을 남겨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친히 복의 개념을 가르치시기를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셨고 신약의 다른 성경에 "받는 자 보다 주는 자가 복되다고" 하셨고 "섬김을 받는자 보다 도리어 섬기는 자가 복되다고" 하셨다. 완전히 구약의 복의개념과는 여실히 다르다는 것이다.

 

구약의 복의 개념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므로 말미암아 그 복의 개념은 완전히 없어진 것이다. 예수님 자신이 복이시기 때문에 구약의 복은 오늘에는 복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왜 예수님께서 복일까?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분이 우리의 전부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타락한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아시기 때문에 인간이 얼마나 탐욕이 강한가를 친히 아시는 분이시다.

이스라엘 둘째 왕이신 다윗 고백하기를 나로 부하게도 마시고 라고 한 것은 그가 교만할까 함이었습니다.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교만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다윗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에 비하여 신앙이라고도 할 수 없는 저희들이 부를 탐하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주님 가르친 기도를 가르치실 때 일용할 양식만 구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매일 같이 예배시간에 앵무새같이 외우지만 다 망각하는지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엄청난 부와 명예를 구하는 것이 아닌가? 이처럼 이중성이 어디 있는가 말이다. 타락한 인간은 부와 명예를 가지면 하나님을 필요치 않는다. 뿐만 아니라 주님을 찾지도 의지도 구함도 하지 않는 것이 지극히 상식인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주겠느냐는 것이다.

 

사실은 구약적 복은 불신자들이 더 받는다는 것이다. 받는다기보다 노력하여 더 취하는 것이다.

 

왜 물질이 부와 명예가 복이 아닌 것은 이 세상은 영원에 비하면 시간상으로 1초도 안 된다는 것이다. 성경에 천년이 하루 같고 란 말씀이 있는데 그렇다면 천년을 하루로 치자 수없는 영원한 년에 비하면 1초도 안 된다는 계산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 이 짧고도 짧은 시간에 부와 명예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자마자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전파하실 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라고 한 것은 신약이 도래되면서 임박한 천국이 카운트타운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옷도 두벌이상 가지지 말라고 하셨다. 즉 부를 가지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복은 받고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이방 종교가 하는 것이며 말세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복은 섬김과 드림이 복이며 순종과 복종 그자체가 복이 되는 것이다. 성도로서 마땅히 회개할 바를 회개하는 것이 복이며 찬양하는 것이 복이며 전도하는 것이 복이며 희생과 봉사와 눈물이 복이라는 것이다. 또 이웃과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 복이며 서로 그리스도안에서 참고 견디며 인내하는 것이 복이 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남을 등을쳐 부를 누리는 것보다 진실하기에 가난하게 사는 것이 복이 라는 것이다.

늘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생각하고 하는 게 복이 다는 것이다.

나의 남은 것으로 이웃과 더불어 나누는 것이 복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내가 사업을 잘하여 많은 재물이 늘어나서 어리어리한 저택을 지어놓고 가정부와 운전기사도 채용하고 남들이 볼 때 정말 부러움의 대상이다. 이정도로 부를 누리면 복 받았다고 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내 집 이웃이 가난하고 초라한 집이 있고 병든 노모나 그 집 분들이 끼니조차 어렵든지 자녀들이 학비가 없어 학교 다니기도 힘들다. 그런데 복 받았다고 하는 내가 그들의 어려움을 외면한다든지 또 내 집에 가정부와 운전시사를 섬기지 못하고 종처럼 한다면 어찌 복이라고 하느냐는 것이다. 신약에 우편에 있는 자들에게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옥에 돌아보아주고 가난한자를 돌봐주었다고 하자 우리가 언제 그랬냐고 따지니 주님께서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하셨던 것이다. 왼편에 있는 작들에게 너희들은 내가 굶주리고 옥에 갇혀도 돌아보지 안했다고 하자 그들은 언제 주님이 굶주리고 옥에 갇혀 느냐고 하자 주님은 지극히 작은 자를 말씀하셨던 것이다.

 

구약의 복은 받기만하고 누리기만하면 복이지만 신약은 그 정도면 주님의 책망의 대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약의 복은 받고 가지는 게 아니라 드리고 섬기고 하는 것이 복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주님의 명령이고 믿음이고 신앙생활인 것이다.

 

이제 목사님들은 더 이상 성도를 속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약을 인용 하실 때는 신약의 키로 풀어야 할 것이다. 지금의 때가 구약의 시대가 아니라 신약의 시대임을 명심하고 성경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니 구약의 복의 개념으로 신약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접목시켜 가짜 신앙을 양성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면을 통하여 교역자들에게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구약의 복의 개념으로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외면하시거나 주님께 부끄러운 교회와 성도로 만든다면 그대는 삯꾼에 불과 하든지 주님과 상관없는 목회자임을 아셔야 합니다. 이제부터라도 복의 개념을 바로하시고 주님의 마음을 깊이 아시어 바른 목회를 하시기 바랍니다.

 

회원 여러분들께 부탁합니다.

더 이상 기복을 전하는 목사에게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때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참다운 신앙인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의ㅣ우ㅣ물ㅣ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벙글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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