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의 율법을 예수님의 육체로 폐하셨다.
구약(옛 약속)과 신약(새 약속)이 무엇이 다른가
글/扈一麥
먼저 이 자료를 제목만 보고 심히 놀라리라 생각이 됩니다.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 않으시려면 여기서 중단하시고 다른 생각을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지금은 신약시대인데 아직도 구약시대에 사는 교인들을 자주 보게되며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구약(옛 약속)과 신약(새 약속)이 무엇이 다른가를 모르는 것 같고,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교인들이 많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할 수 가 없습니다. 십계명의 그 효력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상실한 법(있으나 효력이 없는 법)이 된 것을 모르고 아직도 그 옛것을 붙들고 지키려고 애를 쓰는 교인들이 너무 많다는 것에 가슴이 아픕니다. 구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을 선민으로 택하사 하나님을 드러내시고 교육하시기 위하여 기록하였고 그속에 예수님이 오신다는 것을 예언하신 책입니다. 구약은 교육하며 지킬 대상이고, 신약은 믿음의 대상입니다. 구약은 지키면 육신의 복을 받고 안지키면 복을 못받고 저주를 받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구약을 인용하는 것은 좋지만 구약시대에 법은 사실 죽이는 법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거룩한 것과 속된 것,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분하는 여러 가지 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도 사도행전 10장에서 기도중에 환상을 통해 본 거룩하지 못한 것들과 부정한 것을 보고 하나님께 항의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심으로 신약의 복음시대에는 거룩한 사람(제사장)과 장소(성전), 시간(명절과 절기)과 물건과 음식물(정결하다고 주장한 물건과 음식물)등에 대한 거룩과 정결의 개념이 달라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거룩한 성전의 지성소로 들어가는 휘장을 찟어버리고 믿음으로 하는 길을 열어 놓으셨기에 감히 이방인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천국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요?
1) 신약 시대에는 이방인과 선민 유대인의 구별이 없어졌습니다(엡 2:11~19).
그러므로 기억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육신적으로는 이방 사람들이었고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사람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으로 불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당시 여러분은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제외된 사람들이며 약속의 언약들에 대해 생소한 사람들이며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던 여러분이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시니 자기의 육체로 둘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중간에 막힌 담, 곧 원수된 것을 헐어 내셨고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가 그분 안에서 이 둘로 한 새 사람을 창조해 화평을 이루게 하시고 십자가를 통해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셔서 자기 안에서 원수된 것을 없애 버리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오셔서 먼 데 있는 여러분에게 화평을 전하셨을 뿐 아니라 가까운 데 있는 사람들에게도 화평을 전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더 이상 낯선 사람들이거나 나그네들이 아니라 성도들과 동등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엡 2:11~19]
구약에는 이방인과 이스라엘의 구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 외에는 이방인이라 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반열에 참여할 수가 없었습니다. 구약의 이러한 법은 엄격하여 이방인과의 교제와 혼인을 금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 구별이 폐하여 지고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 받을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 것입니다. 성경은 증거하기를,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5, 18)고 하습니다. 우리(이방인)를 이스라엘 사람처럼 강하게 훈련시켜서 거룩한 사람이라고 한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방인과 같이 낮추어 버려서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같게 만드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신약 시대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없으며,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아직도 구약의 법을 지켜서 거룩한 사람이 되야 한다는 사람들은 땅에 속한 사람이고 성령의 사람이 아닐 것이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열어놓으신 지성소의 휘장을 다시 꿰매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부인하거나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끌어내려 구약으로 돌아가려는 자들입니다.
2) 신약 시대에는 거룩한 장소, 즉 성전의 개념이 없어졌다(신 12:5, 11, 14, 마 18:20, 고전 3:16, 엡 2:21).
신 12:5.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거하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신 12:11.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한 곳을 택하실 그 곳으로 나의 명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곧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가 여호와께 서원하는 모든 아름다운 서원물을 가져가고
신 12:14. 오직 너희의 한 지파 중에 여호와의 택하실 그 곳에서 너는 번제를 드리고 또 내가 네게 명하는 모든 것을 거기서 행할지니라
마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엡2: 21-22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구약에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한 곳(성전)이 따로 있어서 오직 성전에서만 제사를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는 어느 곳에서든지 예배를 드릴 수가 있게 되었고(마18:20), 어느 곳이든지 성도가 모인 곳이 성전이요 하나님이 계신 곳이다(고전3:16). 또한 성령이 거하시는 성도도 성전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요 4:21)고 장소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영적인 예배를 말씀하셨습니다. 또 오직 대제사장만이 들어가던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짐으로써, 이제는 모든 성도들이 만인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직접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3) 신약 시대에는 제사장과 일반인의 구별이 없어졌습니다(벧전 2:9)
구약의 제사장은 오직 구별된 레위인만이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구별은 매우 엄격하게 구별되어서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도 제사장은 언제나 레위인 중에서도 아론의 자손만이 계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이러한 구별이 없어지고 레위인이 아니더라도 성도는 누구든지 만인제사장이 된다는 것입니다(벧전 2:5~9). 교회당은 예배의 처소이지 성전이 아닙니다. 성전의 개념을 버려야합니다. 유대인들도 회당이 있습니다. 교회당은 회당같은 예배당입니다. 목사님도 주의 사자라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교회당에 성경교사이고 담임하시는 목사님들은 제사장이 아니고 목양자일 뿐이며 대표하여 일하는 주의 종입니다. 목사님들은 성경대로 주의 종 이라하시고 제사장이라든지 주의 사자라고 하여 자기를 스스로 높히지 말아야 합니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5-9)
4) 신약에서는 정하고 부정한 물건과 음식물에 대한 구별이 없어졌습니다.
사람의 아들아, 이스라엘의 집이 자기들의 땅에 거하던 때에 그들이 자기들의 길과 자기들의 행위로 그곳을 더럽혔나니 내 앞에서 그들의 길이 분리된 여자의 부정함 같았느니라.(겔 36:17) 암송아지를 태운 자도 자기 옷을 물로 빨고 물로 살을 씻을지니 그도 저녁까지 부정하리라.(민 19:9) 만일 그가 사람의 부정한 것 즉 무엇이든지 사람을 더럽게 하는 부정한 것을 만지면 비록 그 일이 그에게 드러나지 아니하였을지라도 그가 그것을 알게 된 때에는 유죄가 되리라.(레 5:3) 황소와 염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육체를 거룩히 구별하고 정결하게 하거든(히 9:13) 내가 알고 또 주 예수님을 통해 확신하거니와 그 자체가 부정한 것은 하나도 없으되 어떤 것을 부정하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부정하니라.(롬 14:14)
구약에는 부정하고 정한 것의 규례들이 있어서 죽은 시체나 무덤이 부정하고, 경도 하는 여인이 부정하고, 돼지고기나 비늘이 없는 물고기 등도 부정하여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것은 부정하여 만질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와서는 부정과 정결의 규례는 없어졌습니다. 만약 지금도 부정과 정결의 규례가 있다면 경도하는 여인은 부정하니 교회에 나오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돼지고기도 먹지 못하고, 비늘이 없는 오징어나 장어, 추어탕도 먹으면 안됩니다. 사슴 피나 뱀탕, 보신탕, 용봉탕이나 날고기를 회쳐서 먹는 한국 성도들은 한사람도 정한 사람이 없고 부정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롬 14:14)고 함으로 정함과 속된 것의 구별이 없어졌다고 말했습니다.
5) 신약 시대에는 거룩한 날의 구별이 없어졌습니다.(골 2:16, 롬 14:6, 갈 4:10~11).
구약에는 거룩한 날과 보통 날을 구별하였습니다. 이러한 날 중에 특히 안식일에 대한 구별은 철저했습니다. 만일 안식일을 범하게 되면 돌로 쳐죽이라는 엄격한 법도 있었습니다. 즉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려면 살인을 하여야만 합니다. 자기는 물론 다른 사람도 안식일을 못지키게하면 저주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롬 14:5) 그래서 바울은 모든 날이 같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신약의 모든 중요한 사건들은 구약에 미리 예언되어 있습니다.
안식일에 대해서도 다른 모든 절기와 함께 폐할 것이 분명하게 예언되어 있습니다. 구약의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하기를, "내가 그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명절을 폐하겠고...."(호 2:11)라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이 본문에 폐할 것이 예언된 것은 안식일과 절기와 월삭과 명절입니다. 아직도 이런 것을 모르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그리고 저를 이상한 사람 취급합니다. 성경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서 무조건 잘못 배워다고 하면서 저보고 공부를 다시 하라고 합니다. 호세야 4장6절에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구약성경을 보면 알겠지만 모든 이스라엘의 역사는 계속 우상을 숭배해 왔기 때문이며 하나님은 계속 심판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잘못 알고 있었고 이스라엘 땅만 떠나면 하나님이 없는 것으로 이해하여 자기의 사명을 버리고 도망하던 요나는 배 밑에 숨어서 하나님의 낯을 피하는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보게 됩니다. 하나님 제일 중심으로 산다하지만 평소 실생활에서는 풍요의 신을 섬기고 하나님은 무서운 신이며 전쟁할 때만 필요한 신으로 여겼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끝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을 구약에 기록하였고 말라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맺은 약속을 파기하는 이혼장을 선포하셨습니다. 구약은 있으나 효력이 없습니다. 새 언약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구약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맺은 언약서입니다. 신명기 28장 내용처럼 말씀을 지키면 세계의 으뜸되는 제사장 나라로 삼고 어기면 성경에 써놓은 모든 재앙을 내리시겠다고 하셨고 하나님은 약속대로 이스라엘에게 그 재앙을 내리셨습니다.어떤 사람들은 지금도 축복받는다 하니까 신명기 28장을 무서운 줄도 모르고 "여호와께서 명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면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너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세계 만민이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하신 말씀이 신약성도에게 준것같이 좋아하지만 그 말씀을 하실때는 지키지 못하면 저주가 임한다는 말씀 또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구약은 복과 저주입니다.
그렇다면 신약시대에 쓰여진 로마서는 로마인들에게만 해당되며, 고린도전후서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 입니까? 아닙니다. 구약시대에 선택된 백성이었던 이스라엘의 구원은 이제 예수를 믿는 이방인에게 넘기워졌으며,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구약의 절기와 월삭과 명절과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를 모르고 율법만 알면 율법주의자가 됩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유대교 교인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율법의 의미는 모르고, 복음만을 알고 있다면 그 또한 율법 폐기론자가 됨으로서 신비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강하게 강조하지만 율법은 법이 있으나 효력이 없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은 율법이며 초등학문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도 모르고 애굽에서 종 생활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바로 알도록 신앙교육을 시키기 위해 기록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에게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 자신이시며, 이방 우상들을 섬기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선민으로 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갖지 못한 백성들에게 모세를 지도자로 삼아 종살이 하던 애굽에서 구해 주었지만 문제를 만들어서 기회만 있으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려는 것은 하나님이 싫다. 우리는 애굽의 신을 섬기겠다는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참신이신 것과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선조에게 약속한 것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과 예수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실 것을 예언하신 것이 구약의 말씀입니다. 약속대로 예수님께서 오셨고, 죽으시고 사흘만에 승천하셨음에도 불구하도 아직도 그리스도안에서 장성하지 못한 자는 구약을 지키려고 애를 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 돌아가려는 속내는 하나님이 싫은 것같이 구약을 선호하는 사람들 마음은 예수그리스도가 싫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직 마음속에 성령님의 도움을 못받기 때문에 아직 젖만 먹거나 단단한 것을 먹지 못하니 자연히 죽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성령님이 주관하는 자는 복음을 깨닫는 자입니다.
신약은 예수그리스도께서 구약에 예언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것이 자기를 가르친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성령을 보내사 각 사람에게 죄를 사해 주시고, 교훈하시고,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고, 인치시고, 세상 끝날때까지 지켜주시는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과 신약에 대한 관계, 즉 서로 구별되어야 하는 것과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①구약은 예비적 성격을 갖고 있으며, 신약은 집행적 성격을 가집니다.
②구약은 우리가 해서는 안될 것을 말해주고, 신약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해 주시는 것을 말해줍니다.
③구약은 우리를 감금시켜 주고 신약은 우리를 해방시켜 줍니다.
④구약은 우리의 현재의 모습을 말해주며 신약은 우리의 미래의 모습을 말해줍니다.
⑤구약의 강조는 행함에 있고, 신약의 강조는 믿음에 있습니다.
⑥구약은 소망을 갖게 하고 신약을 완성을 가져왔습니다.
⑦구약은 “할 수 없는 것” 행함을 강조하며, 신약에서는 믿음으로“할 수 있는 것”을 강조합니다.
⑧구약은 슬픈 소식이지만, 신약은 기쁜 소식입니다.
⑨구약은 죽이는 것이지만 신약은 살리는 것입니다.
⑩구약은 집단으로 구원을 받지만 신약은 개인 구원입니다.
⑪구약은 성령이 특별한 사람에게만 임하였지만 신약은 예수를 믿는 모든사람에게 임하십니다.
⑫구약은 지키면 복주지만 신약은 아들임을 믿는 자에게 복주십니다.
그러나 구약과 신약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가 있으며, 분리되지 않습니다. 즉 그 둘은 구별은 되지만, 서로 다른 것은 아니라는 것이 이해되어야 합니다. 육신의 복을 받으려면 구약의 율법대로 지켜 행하시면 됩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그리스도를 안 믿지만 세계에서 제일 부자입니다. 물질의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내세를 믿는 그리스도인은 하늘나라 시민답게 살아야 합니다. 복을 이미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미래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의 보호자이십니다.
신약의 열매는 구약의 뿌리와 줄기가 없이는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신약은 구약속에 숨겨져 있고, 구약은 신약속에 제시 되어져 있습니다. 다른 말로 바꾸자면 신약은 구약속에 포함되어 있고 구약은 신약속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신약이 쓰인 것은 구약의 뿌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44절에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그러나 구원의 문제는 이미 예수님께서 다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율법은 육신의 법이지 영의 법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구약과 신약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안식일과 주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구약의 희생제사와 신약의 예배에 대한 차이는 무엇일까요? 구약과 신약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바로 '예수의 피흘림이 있느냐', '없느냐'하는 그 차이입니다. 즉 유월절의 어린양의 피와 예수의 보혈의 차이는 그림자인가 실체인가 하는 차이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것을 알아야만 구약과 신약의 차이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1-12)˝ 당연히 유월절을 지켜야만 죄사함을 받는다는 이단교회의 주장은 거짓말입니다. 구약에서도 피흘림이 있었지만, 그것은 매년 짐승으로 내목숨 대신 제사를 드려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은 지켜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믿어서 구원받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의 피흘림은 영원한 속죄를 이루게 되었므로 다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 10:17- 20)
우리는 신약과 구약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구약과 신약의 근본적인 차이는, 옛 언약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 안에서 구체화된 반면에 새 언약은 예수님이 머리되신 교회 안에서 구체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옛 언약의 국가는 배타적이며 선택적이지만, 새 언약에서의 교회는 포괄적이며 개방적입니다. 옛언약은 다른이는 끼지도 못했는데 새언약은 아주 쉬워서 예수님이 대신해 놓은 것을 공짜로(은혜) 믿기만 하며 되는 것입니다. 구약은 막혀 있었고 신약은 열려 있습니다.
보다시피 구약은 예비적 성격(예표)을 갖고 있으며, 신약은 집행적 성격(성취)을 가집니다. 그러나 아직도 구약에만 얽매어 신약의 성취를 깨닫지 못한다면 그들은 장님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교회는 각 사람을 말합니다. 건물교회가 아닙니다. 바로 당신이십니다.
구약은 정해진 성전에서만 짐승을 잡아서 생명의 제사를 드려야했지만, 신약은 십자가의 예수님의 피를 드린 단 한번의 제사로서 내가 할 일이 없다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죄를 멸하기위해 오셨습니다. 그 죄를 알게 하는것이 율법입니다. 율법 없이는 죄가 있어도 죄가 죄로 인정이 안됩니다. 그 죄를 다 사하시고 세상 죄로 인하여서는 지옥에 안보내시겠다는 것이 예수님의 뜻이십니다. 다만 예수님을 믿지않는 죄만 지옥 보내시겠다고 하십니다. 세상 죄는 육체에 채우게 됩니다. 육체는 죄로 인해 죽게됩니다.扈ⓗ
관련자료보기=안식일은 폐지된 율법입니다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가
예수님이 율법을 폐하셨는가? 완전케 하셨는가? 폐지 된 십계명을 원칙대로 지켜야 할 것인가?
구약의 십계명이 폐지 된 사실을 아는가? 안식일과 십계명을 정말로 지켜야 하는가?
【갈2:19-3:5】 “나는 율법을 위해 사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나는 율법에 의해 죽었습니다. 내가 율법을 향해 죽은 것은 하나님을 향해 살기 위한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내 몸 안에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구하시려고 자기 몸을 바치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습니다.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죽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갈라디아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나에게 분명히 듣고서도 남에게 속았으니, 어리석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 한 가지만 대답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어떻게 성령을 받았습니까? 율법을 지켜서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복음을 듣고 믿었기 때문에 받은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살기 시작하다가 이제 와서 다시 자기 힘으로 살려고 하다니, 여러분은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그렇게 많은 고난을 경험했는데도, 그 모든 것이 다 헛일이었습니까? 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율법을 지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셨습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이 율법을 지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러분 가운데서 기적을 일으키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시고 기적을 일으키신 것은 여러분이 복음을 듣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참고 문헌:정상길 목사님의 설교 글에서 힌트를 얻었고 뼈대를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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