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 駱駝 (약대) 대한 비유]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다.(마19장23-24절,) 그동안 수 십년씩의 신앙생활을 하시면서 자주 목사님들로부터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부자가 천국가는 문이 너무 좁아서 성문 옆에 있는 작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배워왔다면..그것은 분명히 불충분한 증거라고 사전은 말합니다.솔직하게 인색한 부자 신자들 공격용으로 많이도 씌여왔고 너무 자주 듣다보니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입니다. 저 역시도 들은 것을 전하다보니 "바늘귀란 작은 쪽문을 말하는 것이랍니다" 라고 하면서 그대로 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가지의 비유를 들어서 설명해 보고자 합니다. 두가지가 다 예수님의 시대부터 존재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하필이면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셨을까? 참 많은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어디 비유를 하실데가 없어서 큰 덩치의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들어간다고 하셨을까? 그래서 배경을 모르니 별 상상을 다 하여 예수님의 의도와는 다른 것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부자들이 미웠을까?? 아니면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닐까??우리 예수님은 없는 말씀을 절대로 하시지 않는 분이십니다. 모두가 이유 있는 말씀만 하셨고 실제로 전개되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물론 부자들에게 가진 재물을 풀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좋다고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당시 부자는 누구냐? 입니다. 제사장, 바리새인, 사두개인, 세리, 로마의 앞잡이들, 권력가들, 이들은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는 자들이었습니다. 과연 이런 부자들이 백성들의 고통을 몰랐을까요? 구약의 말씀중에 가난한 자에게 하라는 법을 생략했고, 안식일을은 지키려면 안식년 법을 지켜야했고, 안식년을 지키려면 희년의 법을 지켜야하는데 그런법은 생략하였기에 예수님은 부자들의 행위를 미워하였습니다. 문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것보다 낙타(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쉬우리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약대는 수명이 깁니다. 보통은 50-60년. 길게는 80년도 넘기는 약대가 있습니다. 그들은 태어나서 자기 발로 걸어다니기만 하면, 그때부터 인간을 위한 봉사를 합니다. 등에 짐과 사람을 태우고 죽는 날까지 인간을 위하여 일합니다. 힘도 써어서 약 500K의 짐을 등에 실고 다닌답니다. 그리고는 종말에는 자기들이 희생하고 봉사했던 사람들에게 잡혀 가죽은 벗겨서 사람들의 옷이 되고, 살은 사람들의 음식이 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낙타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지만 사마리아나 다른 유대 지역에선 낙타고기를 아주 즐겨 먹습니다. 이집트나 그리스에서도 낙타를 먹습니다만 이스라엘에서는 부정한 짐승입니다. 이야기를 다시 원점으로 돌립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마19장23-24절 본문)
예수님이 사시던 시대와 그전에도 전쟁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지역마다 성이 만들어졌고 사람들은 성안에서 살았습니다. 성안에 산다는 것은 외적이나 강도의 위협에서 보호를 받는 일입니다. 그리고 성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출입하며 마차가 동시에 몇 대씩 다닐 수 있을 만큼 큰 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문을 지키는 문지기가 있어서 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성문을 열고 저녁때가 되면 또 정해진 시간에 성문을 닫았습니다. 절대로 밤에는 열어주지 않습니다.
군인들이 지키는 성문이 닫친 후에는 큰 문으로 들어갈 수 없고 성문 옆에 있는 좁은 문으로만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이 문은 아주 좁아서 이 문을 통과하려면 머리를 숙여야 하며 거추장스런 짐을 들거나 지고서 통과할 수가 없었습니다. 짐을 버리고 몸을 낮추어야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문을 출입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노숙을 하면서 낙타등에 짐을 많은 짐을 실고 다니며 장사하는 대상들은 강도의 위협을 당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문제 입니다. 그래서 항상 안전한 곳을 찿아서 어느 성이든지 밤이 되기전에 성안에 들어가서 쉽을 얻어야 합니다.
만약에 해가 지기전에 성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위해 낙타의 모든 짐을 내려서 하나 하나 들고 들어가고 등치 큰 낙타를 넣는 일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이 좁은 문을 구원의 문, 열처녀 비유나 어두움이라고 표현된 것은 성문밖을 표현하며 성안을 천국 가는 문으로 비유하여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완전하게 녹아진 것을 확인하고 가마솥 밑에 있는 구멍을 막고 있는 진흙을 뜯어내면, 그 작은 구멍으로 하얀실 같은 것이 멈추지 않고 흘러나와 도랑에 준비되어 있는 물로 떨어져서 새림새림의 모양을 갖추고 사람들은 그 실이 식었다고 판단 되었을 때에 낙타를 녹여 만든 그 실을 타래에 감아서 천막을 기울 때에 그 실을 바늘귀에 넣어서 사용을 합니다. 그때 당시에는 다른 짐승을 다 보았지만 낙타처럼 질긴 실은 없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비슷하게 나무를 붙히는 목공용 접착제인 아교를 만들때 소의 뼈를 녹여서 사용하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제사장입니까? 손에 예수의 피가 들려 있습니까? 우리는 왕같은 제사장입니다.(벧전 2:9) 왕은 다스리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다스릴 백성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왕같은 제사장은 나를 다스리고 나의 죄를 예수의 피를 드려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은 죄인과 하나님과 중간에서 죄인의 죄를 처리해 주는 역할을 하는 자입니다. 목사가 성도들을 죄있다고 한다면 잘못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린양 되셔서 내 대신 죄를 다 처리해 주셨는데 그것을 믿지 못하고 중간 역할을 잘못하는 것은 제사장이 아닙니다. 지금 성도님은 왕같은 제사장의 역활을 충분히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우리들은 모두가 예수를 죽인 죄인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피를 보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내 대신 죽이고 죽음을 이기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든지 생명을 내어놓던지 우리는 아무것도아니요, 아무것도 유익되지 못하지만 낙타처럼 자기 몸을 다 녹여 주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야 천국갑니다. 이것이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역사입니다.
천주교에서는 예수를 죽여 십자가에 못밖아 놓고 마리아와 교황과 성인들과 착한 행실을 앞세워서 천국가기를 원하고 있지만, 우리는 살아나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천국가시길 원합니다. 예수이름과 그를 높혀주신 이름을 힘입어 갑니다.부자가 천국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통과하기 보다 어렵다고 하셨으니 불가능 하다는 뜻입니까? 다 내려 놓으면 쉽게 갈 수 있습니다. 성문은 닫쳐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 가려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작게 들어가야 합니다.
낙타는 바늘귀를 통과 하였는데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천국갈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듯이 낙타처럼 몸을 십자가에 내어놓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갈 수 있습니다. 낙타의 실이 되어서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도들을 하나님과 꿔매는 역활을 감당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원합니다. 낙타의 희생이 인간들이 쓰기 좋은 실(絲)이 되어 바늘귀로 들어가서 천막을 만들고 인간들에게 봉사를 하였듯이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온몸을 다 주신 것같이 그런 봉사와 사랑과 희생의 마음이 갖추어져 있는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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