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함
하나님이 즐거워하는 안식.
본문 - 히브리서 4:1-4 글/이상봉 목사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4:1-4)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며 살도록 지어졌다. 이것은 세상 창조 때부터 그러한 것이다.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4:3하) 세상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다는 말은 하나님의 안식이 세상(사람)을 창조하신 그때부터 벌써 사람들에게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약속이 아니라 처음부터 주어진 환경이었던 것이다. 나면서부터 사람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안식하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타락으로 인해 안식을 상실했기 때문에 안식은 (부르심 받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약속’이 된 것이다. 그러나 본래는 (사람이 안식을 누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安息)하시니라”(창2:2)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1:31)
사람의 안식은 하나님의 일이 완성되고 하나님이 안식에 들어가신 것이 기초한다. 하나님이 안식하셨다는 것은 그가 하신 일(창조 역사)이 완전하고 충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그렇지 못했다면 하나님은 만족하지 않았을 것이며 안식에 들어가시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일을 시시하게 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일은 언제나 빈틈이 없고 완전하다. 사람과 만물을 만드신 후 하나님은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말씀하셨다. 사람의 안식은 바로 여기에 기초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안식은 단지 미래에 있을 어떤 약속이 아니라 이미 있어온 것이며 지금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사람을 당신의 안식 속에서 안식할 수 있도록 해놓으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안식하며 살 수 있다.
사람에게 주어진 안식의 삶은 과거(창조 때)와 현재(그리스도와 동행하는 현재의 삶)와 미래(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삶)를 통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다. 왜 하나님은 사람에게 이런 안식을 주셨는가? 그것이 사람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안식과 거기서 나오는 찬송을 통해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 안식을 반드시 누려야 한다.
사람이 안식해야 할 필요는 사람 자신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도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 안에서 안식할 때 하나님은 그 사람 안에서 안식하신다(만족, 기쁨을 얻으신다). 우리는 사람만 안식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안식을 필요로 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안식은 자기 이름을 두실 수 있는 사람을 얻을 때, 자기의 마음을 나타내고 자기의 뜻을 이룰 사람을 얻으실 때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자신을 위탁할 수 있는 사람을 얼마나 필요로 하시는지!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큰 안식을 얻으실 수 있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아들들 안에서 안식을 얻기를 원하신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섰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계21:3)
하나님의 장막은 하나님의 거처요 하나님의 쉼터(안식처)를 말한다. 그런데 계시록에 보면 이 장막은 꼭 사람들과 함께 서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 사람이 하나님의 장막이요 쉼터라는 이야기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이요 집이다.
모세는 장래의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히3:5,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6,17)
하나님이 천지 창조 때 안식하신 것은 결국 사람을 지으신 후 안식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칠 일째 안식하신 것은 하나님을 나타낼 아들인 사람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아들이 하나님의 기업이요 집(성전)이요 안식처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안식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든 하나님을 위해서든 안식을 누리지 않으면 안 될 운명으로 지음 받은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지음 받은 얼마 후 타락하여 자기 자리를 떠남으로써 하나님을 나타낼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지위를 잃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안식이 되지 못하게 되었고 또한 사람 자신도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과 단절되었으므로) 안식이 없게 되었다.
이러한 실패를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은 구속 계획을 세우셨다. 첫 단계는 이 땅에 당신의 이름을 두실 하나의 민족과 나라 - 이스라엘 - 를 세우시는 것이었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로 이스라엘 나라(백성)를 이루게 하셨다. 그리고 그들로 하나님의 안식을 회복하여 누리게 하셨다. 둘째 단계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에 참 평안과 안식이 흐르는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는 것이었다.
아브라함을 부르심으로 시작된 하나님의 회복 역사는 다음 세 단계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① 그 백성을 애굽의 죄와 고통에서 해방시켜서 가나안에 들어가 살게 하는 것.
②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께 순종함으로써 그 백성들로 하나님이 주시는 땅의 안식을 누리게 하는 것.
③ 그리스도가 오시고 그가 모든 것을 완전히 회복하게 하신 후 그를 믿는 자들이 그 믿음 안에서 완전하고 참된 안식을 누리게 하는 것.
하나님께서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 주시고자 한 안식은 주로 땅의 안식, 외적 환경적 안식이었다면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고자 한 안식은 인격의 안식, 생명의 안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인격의 안식은 사람이 그 속에서부터 모든 문제가 해결됨으로써 근본적인 안식을 가지는 것이다. 즉 사람이 참 ‘안식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환경에 따라 안식도 하고 요동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 어떤 환경 속에서도 안식할 수 있는 것이 안식의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되려면 생명 안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안식의 사람은 개인적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단체적으로도 나타난다. 이 단체적 안식의 인격이 바로 ‘교회’이다. 교회는 세상이 온갖 일들로 요동하고 흔들릴 때 환경과 관계없이 안식할 수 있는 단체적 인격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서 땅의 안식을 누릴 수 있었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순종할 때 그들은 전쟁으로부터, 재난과 기근과 전염병으로부터 보호받음으로써 안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격의 안식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잘 순종할 수 없었다. 탐욕과 망상이 그들로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찾게 만들었으며 이것은 결국 그들로부터 하나님의 보호 곧 땅의 안식을 빼앗아 가버렸다. 그러므로 땅의 안식이 지속적이고 완전하게 이루어지려면 반드시 사람의 안식 곧 인격(생명)의 안식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땅의 안식과 사람의 안식 곧 인격의 안식이 합쳐질 때 비로소 완전한 안식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안식은 지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주님이 오실 때 비로소 완전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이 영원한 안식의 세계 곧 ‘완전한 천국’이다. 지금 땅의 안식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들 안에 안식이 없기 때문이다. 즉 세상에 마귀가 있고 그 마귀가 사람들 안에서 죄와 고통과 혼란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귀가 없어지고 죄가 사라지고 사람들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안식이 있게 될 때 비로소 세상에는 진정한 안식이 있게 될 것이다.
“또 다시 거기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4:5-11)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라는 말씀과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는 말씀이다. 안식할 때가 남아 있다는 말은 결국 ‘지금 우리는 안식해야 한다’는 말이다. 천국은 우리가 죽은 후에 혹은 주님이 재림하신 후에 전개되는 것이 아니고 지금 여기서 우리 삶 속에서 전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의 재림 후에 이루어지는 영원한 천국이 더 완전하고 더 좋은 것이지만 하나님의 뜻은 지금 이 땅에서 우리가 (우리의 안식과 찬송을 통해) 사탄을 부끄럽게 하고 그의 나라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현재의 천국이 미래의 천국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안식이 없는데 나중에 무슨 안식이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 둘은 연속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안식을 기초로 한 안식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세상에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안식의 빛을 비추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안식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신자가 삶 속에서 어떤 환경, 어떤 어려움을 만나든지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의 승리를 힘입음으로써 요동치 않고 조용히 주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의 영광이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때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서는 것이다.
신자의 삶에서 제일 중요한 사역은 범사에 하나님을 믿고 조용히 안식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이다. 크고도 중한 사역이다. 하나님을 앎으로써,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어떤 상황 속에서도 걱정과 염려와 불평과 원망을 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찬송과 감사와 간증을 유지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는 사역이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은 우리로 그의 찬송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1:11,12)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4-10)
바울이 말하는 바는 우리가 세상에 스스로 태어난 것이 아닌 것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것 또한 우리 자신이 스스로 유지하고 영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고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생명의 능력으로 우리 인생을 펼쳐나가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가만히 있어야 한다. 이것이 기본이다.
믿음에는 행동(순종)이 따르므로 결국 우리는 몸을 사용하지 않고 가만히 있거나 지각을 사용하지 않고 멍청히 있게 되지는 않는다. 성령의 인도에 따라 우리는 생각도 하고 수고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 우리의 영혼은 주님 안에서 항상 고요하고 평안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우리의 심령은 어떤 경우에도 요동하지 않아야 한다. 안식이란 심령의 평안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의 평안을 잃으면 그것은 무조건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목적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은 우리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많은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주도하고 우리가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그의 지혜와 능력을 따라 선한 일을 이루어 나가시도록 우리 자신을 내맡기고 그가 이루시는 것을 누리면 된다. 우리의 일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이다. 받는 것도 일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순종하자’는 것이다.
이 순종이라는 것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생각케 하시고 일하게 하심에 반응하여 그대로 몸을 내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길은 마음으로는 안식하고 몸으로는 순종하는 것이다. 이것이 은혜 안에서 행하는 것이며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반대로 산다는 것은 어떤 모습인가? 마음으로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염려 걱정하고 몸으로는 방향 없이 이리저리 몸부림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한 자가 되려면 우리 안에서 반드시 믿음과 안식의 표시 곧 감사와 찬송과 담대함과 여유(관용)가 나와야 한다. 불평과 원망, 걱정과 염려, 낙심과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자가 없고, 믿음과 평안과 담대함과 감사와 찬송이 있는 자를 쓰러뜨릴 수 있는 사탄의 무기가 없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안식과 찬송 위에 세워지고 마귀의 나라는 사람의 불평과 원망 위에 세워진다.
이스라엘의 경우를 통해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20:8-11)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으로 너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5:14-15)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름(새 생명)을 받은 자는 그 체질이랄까 삶의 방향이 하나님 중심으로 움직이도록 되어 있다. 고기가 물에서 살고 새가 하늘에서 살게 되어 있듯이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도록 되어 있으며 하나님을 믿음으로 삶 속에서 안식할 수 있게끔 되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처음부터 그런 것이다. 사람은 그렇게 살게끔 지음 받은 존재이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 너는 육년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육년동안 그 포도원을 다스려 그 열매를 거둘 것이나 제7년에는 땅으로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다스리지 말며, 너의 곡물의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고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나무의 맺은 열매를 거두지 말라. 이는 땅의 안식년임이니라. 안식년의 소출은 너희의 먹을 것이니 너와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품군과 너와 함께 거하는 객과 네 육축과 네 땅에 있는 들짐승들이 다 그 소산으로 식물을 삼을지니라” (레25:2-7)
“너희는 내 법도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 땅에 안전히 거할 것이라. 땅은 그 산물을 내리니 너희가 배불리 먹고 거기 안전히 거하리라. 혹 너희 말이 우리가 만일 제 칠년에 심지도 못하고 그 산물을 거두지도 못하면 무엇을 먹으리요 하겠으나 내가 명하여 제 육년에 내 복을 너희에게 내려 그 소출이 삼년 쓰기에 족하게 할지라. 너희가 제 팔년에는 파종하려니와 묵은 곡식을 먹을 것이며 제 구년 곧 추수하기까지 묵은 곡식을 먹으리라”(레25:18-22)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안식년을 지킬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어떻게 완벽하게 조치를 취하셨고 보장하셨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람이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만일 생활 문제(먹고 사는 문제)라면 사람은 반드시 이 문제에서 믿음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된다.
“너희가 대적의 땅에 거할 동안에 너희 본토가 황무할 것이므로 땅이 안식을 누릴 것이라. 그 때에 땅이 쉬어 안식을 누리리니, 너희가 그 땅에 거한 동안 너희 안식시에 쉼을 얻지 못하던 땅이 그 황무할 동안에는 쉬리라”(레26:34-35)
“그들이 나의 법도를 싫어하며 나의 규례를 멸시하였으므로 그 땅을 떠나서 사람이 없을 때에 땅이 황폐하여 안식을 누릴 것이요 그들은 자기 죄악으로 형벌을 순히 받으리라”(레26:43)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같이 안식하여 칠십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대하36:21)
이스라엘은 사울 왕으로부터 마지막 여호야긴 왕 때까지 약 490년 동안 지내면서 한번도 제대로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기간동안 70년의 안식년을 전쟁으로 인해 망한 땅에서 누리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셔서 가나안으로 들이시면서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하나님이 왜 그들을 불러내셨는지에 대해 그리고 그들이 그 땅에 들어가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부르신 것은 그들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과 함께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방인들이 그 육체의 정욕대로 살며 그들의 신을 의지하여 모든 일을 행하는 것과 달리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하나님의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능력을 의지하여 살아야 했다.
하나님과 함께 살며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삶은 백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한편으로는 의무이기도 하지만 다른 편으로 보면 그것은 큰 특권이요 영광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과 함께 하며 하나님을 누린다는 것은 인간에게 진정한 삶의 안식을 가져다 주는 복된 삶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십계명의 말씀을 통해 그들이 하나님의 땅에서 반드시 안식일을 지켜야 할 것을 명하셨다.
안식일제도란 한 주일을 단위로 할 때 6일 동안은 일하지만 7일 되는 날에 쉬는 제도이다. 왜 7일에 쉬는가? 이론적으로 안식은 그들의 한 주간의 삶과 모든 일이 그들의 목표대로 다 이루어지고 또한 그것이 만족스러울 때 가능하다. 그들이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한 주간의 그들의 삶이 바로 그렇게 만족스럽다는 표시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삶이란 것이 실제로 어디 6일만의 일로 완전히 부족함 없이 다 되어지는가? 물론 그렇지 못하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삶의 내용과 목표 그리고 보증이 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기만 하다면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으로 만족하며 세상의 어떤 다른 것을 추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반드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안식을 누려야 했다. 만일 그들이 그렇지 못하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억지로라도 그것을 누리게끔 만드셨다. 그들 자신은 물론이요 그들에게 머무는 나그네와 종들과 짐승들 심지어 그들의 땅까지도 하나님으로 인해 안식을 누려야 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하셨다. 이제 우리는 싫든 좋든 이 자리를 떠날 수 없다. 만일 우리가 탐욕을 버리고 그리스도로 우리의 목표와 소망을 삼으면 행복할 것이요 세상에서 안식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스라엘과 같이 믿음으로 살지 않고 세상을 좇아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삶을 산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이스라엘과 같이 전쟁과 환란 속으로 몰아 넣어 강제로 안식을 지키도록 만들 것이다. 하나님이 그 백성으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쓰신 방법은 다양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바벨론에 의해 포로로 잡혀가게 하심으로 이스라엘 땅이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안식을 누리게 하셨을 뿐 아니라 그 백성들로 하여금 이방 땅에서 더 이상 정욕을 따라 무엇을 추구할 수 없도록 고생을 하게 만드심으로 결국 할 수 없이 하나님만 생각하고 다른 것을 더 이상 추구하지 않고 안식하게 만드셨다.
사람이 안식하지 못하는 것은 『탐욕』과 『불신앙』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생명으로 살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으로 감사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어떤 상황, 어떤 환경에서도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님을 참으로 믿고 그가 우리를 완전한 길로 인도하심을 믿는다면 역경 가운데서도 안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게 영적 욕망 대신 헛된 탐욕이 차 있으므로 안식이 없는 것이며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안식이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자기 땅에서 평안히 살게 해 주실 때는 그들의 탐욕과 믿음 없음으로 인해 안식하지 못했다. 하나님은 그들의 삶을 돌이키고 믿음과 순종 가운데서 안식을 누리도록 할 것을 촉구하셨으나 반응이 없었다. 그러므로 드디어는 그들을 이방 대적에게 사로잡히게 하시고 이방 땅으로 옮기셨다. 거기서 이스라엘은 더 이상 탐욕을 추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전에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더 귀하게 여기던 모든 일들, 온 힘을 쏟아 붓던 그 여러 가지 일들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또 거기서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안되었다. 다른 의지할 것이 다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거기서 하나님만을 바라며 안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그들을 억지로 안식케 하셨다. 그들이 이방으로 잡혀간 후 이스라엘 땅은 황무지가 되었으므로 그 땅도 안식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이 안식일과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강제적으로라도 하나님의 나라에서 그러한 안식이 반드시 있도록 만드신 것이다.
하나님이 이것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우리에게 억지로라도 안식의 세계로 나아가도록 떠밀기까지 하신다. 만일 우리가 정상적인 믿음 생활을 통해서 안식을 누리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질병과 사업 실패, 감옥에 갇히게 하시는 등의 각종 환란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강제로 하나님을 찾게 만들고 그리스도 안에서 오는 안식과 평안을 억지로라도 추구하게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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