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글/김병덕 목사 만약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구원을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로 본문 말씀과 같이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말씀뿐 아니라 성경에는 내가 구원을 이루어야 하는 것 같이 기록되어 있는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당연히 본문 말씀을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구원을 내가 이룰 수 있다면 예수님께서 무엇 하러 오셨습니까? 내가 구원을 이룰 수 있는데 굳이 예수님이 오시지 않아도 내가 구원을 이루어야 하는데 오셔서 굳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꾸준히 무엇을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단회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구원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지식입니다 그 지식을 기초에 두고 성경해석을 하지 않으면 스스로 구원을 이루려 하다가 결국 자기 함정에 빠져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救援]의 사전적인 뜻입니다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하여 줌. 인류를 죽음과 고통과 죄악에서 건져 내는 일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쉽게 설명을 드리면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 사람을 건져내는 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힘이 다 빠져서 이제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처지에 있는 사람을 누군가 와서 그를 끌어내어 그 생명을 살려 주는 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와서 끌어 낼 때 물에 빠져 있는 사람이 끌어내는 사람을 돕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끌어내는 사람의 능력으로만 생명이 살 수 있는 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아직 힘이 남아 있는데 구원해 주는 사람이 와서 협력해서 물에서 빠져 나오는 것도 구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구원은 온전히 끌어내는 이의 능력만으로 행하는 것이라서 은혜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끌어 내 주는 이가 손을 내 밀고 내가 그것을 붙잡아서 물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끌어내는 이의 강한 손이 건져 내는 것을 구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물이라고 합니다.
만약 죄를 짓지 않고 율법을 모두 다 지킬 수 있다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을 행할 때 두려워합니까? 아니면 죄를 질 때 두려워합니까? 선을 행할 때는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에 담대함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지 못하기 때문에 선물이 나로 말미암아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선물을 받는데 있어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 구원을 내가 이루는 것 같으면 당당할 수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선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고 에베소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은 내가 무엇을 행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은혜를 믿는 것입니다. 나는 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예수님께서 다 이루신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내 것 같으면 두려워하고 말 것이 없습니다. 남의 것을 더구나 선물로 영원한 생명을 받는데 있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이지 내가 무엇을 행하라고 하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을 거울에 비춰보면 뻔히 율법에 복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기 때문에 더욱 더 두려워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구원을 이루기 위해 더욱 율법에 매달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 함정에 빠져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율법으로는 복종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단 한사람도 그렇게 행한 사람은 없습니다. 욥이 자기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내게서 죄를 찾아보라고 그 친구들과 변론을 하면서 나중에는 하나님의 공평한 저울에 달려 보겠다고 자신 있게 자신을 변호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욥의 죄를 지적해 주시니까 스스로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에 복종하라고 이 말씀을 기록했습니까? 사도 바울은 여러 곳에서 율법이 폐하여 졌다고 기록을 하고 있는데 자기가 폐하여 졌다고 하는 그것에 다시 복종하라고 본문 말씀을 기록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성경을 볼 필요도 예수를 믿을 필요도 없습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라는 것은 내가 어떤 것을 행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또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 일을 하는데 있어 내가 행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내가 한 것이 없기 때문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어떤 행위를 해서 구원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미리 내 생각에 기초를 놓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본문 말씀을 보면서 거의 율법적인 사상에 사로잡혀서 해석을 하고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삭에게 약속을 하시고 야곱을 구속하셔서 구원하신 것도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그들이 어떤 행위를 잘 해서 자기들을 구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은혜를 입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성경은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구약의 모든 사람들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바로 이 믿음이 복음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복음에 복종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믿으려 하기 보다는 행위에 집착을 하게 됩니다. 신앙인들이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만약 이 둘을 다 갖출 수 있다면 우리는 오직 믿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내용을 따라가는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복음에 복종을 하면서 자기 구원을 이루기 위해 성경 전체의 내용을 알고자 지혜를 늘 구합니다. 그러나 형식에 사로잡히면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주의에 빠집니다. 이스라엘은 완전한 형식을 추구하는 율법주의였다면 이 시대는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것 같이 음녀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음녀는 두 남편을 함께 섬기는 자입니다. 율법의 남편과 복음의 남편을 함께 섬깁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이 될수록 교회는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 하나는 바로 신비주의고 다른 하나는 음행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율법주의에서 변화가 된 성화주의입니다.. 복음도 믿고 그리고 율법도 잘 지키는 사람의 눈에 보기에 최상의 모습으로 보여 진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왜 마지막 교회의 모습을 보고 놀랐겠습니까? 사도 요한이 보기에는 분명히 구원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완전하게 보였는데 그 교회가 바로 음녀에게 미혹이 되어 있는 교회였기 때문에 사도 요한이 놀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도 놀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 사람들이 과연 그것을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복음이 완전하게 있어 구원을 받은 사도 바울도 마지막 교회의 모습에 놀랐습니다. 사단이 얼마나 지혜로운가를 바로 깨닫지 못하면 이 놀라운 것을 자기가 멸망에 빠질 때에 알게 됩니다.
내용을 모르고 형식을 따라가려 하는 일부 대형 교회들에 의해서 거의 모든 사람이 영적인 음행에 빠져 들어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절대로 그것이 음행이라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아무리 지혜가 뛰어나고 이 세상의 모든 이치를 다 깨달았다 해도 복음을 내 지혜로는 깨닫고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나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셔야 가능한 일입니다. 알게 하셔야 믿습니다. 내 구원을 이루려고 하는 자체가 음행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이고 그 놀라우신 경륜에 의해 내가 구속함을 입어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기 구원을 자기가 이루려 하다가 결국 음행의 그물에 걸려 사망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쁘신 뜻을 위하여 나에게 복음을 믿게 하시고 그 복음을 내가 믿음으로 하늘에 소원을 두고 살아갈 수 있게 인도하고 있습니다. 내가 천국을 사모하는 그 자체도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에 나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천국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곳은 돈으로도 명예로도 그리고 내 의로움으로도 살 수 없는 곳입니다. 아니 이 세상을 다 준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팔지 않으십니다. 그런 천국에 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께서 나를 기뻐하셔야 가능합니다.
천국은 내 노력으로는 갈 수 없고 하나님께서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 거저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에 은혜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두 남편을 섬기면서 음행을 하는 자들입니다. 천국의 가치를 너무 모릅니다. 모르기 때문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 스스로 구원을 이루려고 노력을 합니다. 오히려 그 노력으로 인하여 그물에 빠져 천국에 갈 수 없게 되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제가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도는 굳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복음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를 아주 잘 알고 있고 그렇게 행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자랑하지 않고 지금도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않으면서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복음에 복종하시기 바랍니다. 복종을 하지 않으면 사람은 보는 눈이 있기 때문에 자꾸 율법의 모양을 쫓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정말 두려운 마음으로 복음에 복종하지 않으면 반드시 율법에 빠져 자기 영혼을 잃어버리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순종한 것 같이 내가 있을 때뿐 아니라 지금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일하여 드러내라. 빌립보서 2:12 <킹제임스 흠정역> 관련자료보기=☞'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무슨 의미
구원은 내가 이룰 수 없습니다. 내가 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복음에 복종을 하여 내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렇게 복음에 복종하게 하시는 능력이 바로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진리의 성령의 감동을 받아 복음에 복종하여 자기 구원을 이루는 성도가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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