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지 편지 101편-10*구세주
41.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구세주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구세주이십니다. 죄인들을 위해 사랑으로 대하시는 주인이십니다. 진정으로 죄인인 인간의 주인이 될 수 있는 분은 십자가 죽음으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 용서를 받으십시오. 예수님을 영접하여 신자가 되십시오.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로 모십시오. 예수님을 통한 구원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로다. (신약성경 요한복음3:16)
42. 세상 쉬운 것이 천국 가는 길!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그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감당케 하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십자가 다리를 놓아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던 죄인인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어 천국에 가게 하셨습니다.
1. 죄인은 지옥행! 의인은 천국행! 죄인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떨어지게 되고, 의인은 생로병사가 없는 영원한 천국에 가게 됩니다. 2. 모든 사람은 죄인! 모든 인간은 죄인이므로 지옥에 가게 됩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선행, 철학 등 자기 힘으로 천국에 가려고 하나 결국은 허사입니다. 천국은 결코 선행, 지식 등으로는 갈 수 없습니다. 3. 죄인이 의인되는 길 ․ 예수의 피를 믿으면 모든 죄인은 의인이 되어 천국에 갑니다. ' 피 흘림 없이는 죄 사함이 없느니라. '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착한 일을 많이 했다고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니며, 오직 구원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Q : 당신의 생애세서 돈, 명예, 출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A : 영원한 내세(천국)를 준비하는 일입니다.
43. 지옥은 존재하는가? 프랑스의 무신론자 볼테르는 지옥을 없앨 수 있다는 사람에게 축하한다면서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무신론자 리치(M.F.Rich)는 영원히 끔찍한 지옥에 가는 것보다 난로 위에서 백만년 동안 고통받는 것이 더 낫다고 지옥의 무서움을 토로했습니다. 지옥! 말만 들어도 숨이 막히고 현기증이 납니다 지옥은 어떤 곳인가? 지옥은 한마디로 말한다면 표현이 불가능한 고통의 현장입니다.
천국의 아름다움을 한마디로 나타낼 수 없듯이 지옥의 처참한 고통도 인간의 언어로서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 직접 체험해 보지 않고서는 지옥을 말할 수 없겠지만 성경이 계시한 지옥에 대한 말씀을 통해 간략하게나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① 지옥은 의식이 또렷한 곳입니다. 지옥은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의식불명의 상태나 정신이 혼미한 영혼들의 거처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보다 더 처절하게 슬픔과 절망을 느끼고 정신이 또렷한 상태에서 아픔과 고통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는 곳입니다.(눅 16:23,24).
② 지옥은 고통스러운 곳입니다. 지옥에서 당하는 고통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는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심판을 내리고 지옥에 던진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계20:11~15, 계21:8). 불교에서는 팔열지옥과 팔한지옥 등 136종의 지옥이 있다고 가르치지만 성경에는 그런 말이 없고 단지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심판하여 불못에 던진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행한 대로 보응 하여 심판을 내릴 때 고통의 강도는 틀리겠으나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다'(마 22:13)는 말로 미루어 그 것은 사람의 상상을 불허하는 곳으로 여겨집니다.'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 하여 저희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눅 16:24 ~ 28).
③ 지옥은 어두운 곳입니다. 지옥은 어둡고 음산한 것이 특징입니다. (마8:12). 여기저기서 타고 있는 유황불에 비쳐오는 어스름한 불빛 외에는 빛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빛을 싫어하고 어두움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지옥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8:12)
④ 지옥은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 곳입니다. 지옥에서는 죽음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곳은 영원히 살아서 고통을 받는 곳입니다.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막9:48,49)
⑤ 지옥은 그리스도인들과 영원히 분리되는 곳입니다.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나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눅13:28)'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눅16:26)
⑥ 지옥은 풀려 날 희망이 전혀 없는 곳입니다. 지옥에 가는 것은 '영원한 심판'을 받아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지옥에 들어 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합니다. '영벌'이란 말이 그것을 입증해 줍니다 (마25:46) 성경에는 구원을 얻은 사람은 죽을 때 낙원 (눅23:43)에 가며,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죽으면 영혼이 음부(눅 16:23)로 간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심판의 부활로 부활할 때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영혼이 음부에서 나오고 육체가 바다에서, 땅에서, 무덤에서 부활되어 재결합되어 심판을 받고 불못에 덜어지는데 이곳이 지옥입니다. 예수님은 지옥에는 영혼뿐 아니라 몸도 같이 가게 됨을 말씀하셨습니다 (마 10:28) 당신은 하나님 만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어야 지옥가지 않습니다.
44. 성경이란 무엇인가? 각기 다른 시대, 다른 직업을 가진 40명의 기자들에 의해 1,600년에 걸쳐 기록된 책.그러나 제1권에서 66권까지 한 사람이 쓴 듯 일관된 책.모든 문학 형태 즉 산문, 시, 소설, 신화, 전기, 과학, 역사로 표현되는 모든 있을 법한 주제들을 포괄하는 책..전세계 2300여 언어로 번역되고 출판된 책.인류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바로 성경은 그 자체에 붙는 수식어만 보아도 충분히 읽어 볼 만한 책이다.
31,173절, 774,746단어, 3,567,180글자(흠정역 성경 기준)를 가진 66권을 만들기 위해서 1,551장소에서 2,930명을 등장시켜서 20가지 직업을 가지고, 10개국에서 살며, 3개 언어를 사용하는 40명의 독자적인 기자들이 1,600년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일괄적으로 지도한 편집자나 출판사가 없었다. 성경이 초자연적인 책이라는 한 증거는 기자, 문화, 표현 형태의 광범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놀라운 통일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줄거리가 무엇인가? 성경은 시종일관 하나의 완전한 주요 줄거리를 갖고 있다. 거룩하신 사랑의 하나님을 거역해서 한 사악한 원수가 에덴의 완전한 환경을 더럽힌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형태로 선악이 대립하며 때로는 악이 승리할 것같이 기세를 떨치기도 한다. 주인공의 승리를 바라는 소망은 더욱 간절해지고, 마침내 그 분이 임하셔서 악을 이기신다. 그 주인공은 영구히 그 전쟁을 종결짓기 위해 큰 백마를 타고 돌아올 것을 약속하신다. 더욱 많은 영적 전쟁이 있은 후, 하나님은 완전한 처소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있는 자들과 함께 결국 승리하신다.
제 1권부터 제 66권까지 성경전서는 다음과 같이 일관성 있게 말씀하신다. 모든 생명과 선의 근원이신 유일하시고 신실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 이상적인 상태에서조차 하나님께 충성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인간 인간을 자신과의 관계로 이끌기 위해 한결같이 노력하시는 하나님 어둠의 권세를 이끄는 악한 권세자 믿음으로 받은 은사인,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하나님의 구원 예수 그리스도. 구약은 그리스도의 강림을 고대하고 신약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 부활 그리고 그 분의 재림에 대한 예언을 보고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처럼 일관성 있고 완전한 책을 인간에게 주실 수 있었다. 어느 부분을 읽을지라도, 당신은 하나님의 계획,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 성령의 능력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45. 가증하고 부패한 인생 사람이 무엇이관대 깨끗하겠느냐 여인에게서 난 자가 무엇이관대 의롭겠느냐 하나님은 그 거룩한 자들을 믿지 아니 하시나니 하늘이라도 그의 보시기에 부정하거든 하물며 악을 짓기를 물 마심 같이 하는 가증하고 부패한 사람이겠느냐(욥기 15:14~16). 파란 하늘과 죄악으로 가득 찬 사람의 마음을 비교해 봅시다. 하늘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깨끗하지 못한데, 하물며 악을 짓기를 물 마심 같이 하는 가증하고 부패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 앞에 깨끗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의 모든 종교는 사람에게 선행을 가르칩니다. 착한 일 많이 하면 곧 선을 많이 쌓으면(적선:積善) 복 받고 극락에도 간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람에게 선행을 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악행을 가르친다는 말입니까? 그런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무엇을 말합니까? 선행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에게는 참된 의미에서 선을 행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기 이전에 인간은 이미 진정한 의미의 선을 행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어서 마음은 완전히 타락되었으므로 그 더러운 마음으로부터 선은 나올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나무로 말하자면 나쁜 나무입니다. 나쁜 나무보고 좋은 열매 맺으라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에게 먼저 선한 일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인간은 하나님의 기준에서 볼 때 선을 행할 수 없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반박하며 아니 사람이 죄만 짓나, 선한 일도 하지 않는가라고 말합니다. 인간이 행하는 선이 사람이 볼 때는 선한 것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람 볼 때 선일 뿐 하나님 보실 때는 선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한문에 사람 인(人) 자 옆에 할 위(爲)자를 쓰면 거짓 위(僞=人+爲) 자입니다. 사람이 하는 선은 위선(僞善), 즉 거짓 선이라는 것입니다. 선은 선인데 죄가 발린 선입니다. 그것으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가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그러므로 먼저 구원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죄 가운데서 먼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생명에 접붙임 받아야 합니다. 나쁜 나무에다 거름을 많이 주고 물도 많이 주면서 좋은 열매를 맺으라고 공을 들일 것이 아니라, 좋은 나무에 접을 붙이라는 말입니다. 좋은 나무에 접 붙이면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구원받을 때, 거듭날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 용서함을 받는 동시에 하나님의 생명에 접 붙임을 받는 것입니다
46. 영혼이 돌아갈 곳 '영혼은 과연 어디로 갈까요?' 참으로 허황(虛荒)되고 막연한 생각이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나'는 이 글을 읽고 있는 이 현실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나는 그 어디에서부터인가 왔다는 이 사실은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디에서부터 왔는지에 대하여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죽은 후에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알 필요가 없다는 사람이 참 많은 듯합니다.
그리고 쉽게 알 수 없는 일이라며 '그걸 알 수 있다면 내가 당장 유명한 철학자가 되게?' 혹은 '죽으면 그만이지', '모두들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니까 나도 그냥 이렇게 사는 거야'. 천국이 어디 있고 지옥이 어디 있어? 당신은 가 봤어?'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말이 있습니다. 닭이 없는 데 달걀이 생겨날 수 없고 달걀이 없는데 닭이 어떻게 생겨날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말은 해결할 수 없는, 팽팽히 맞선 어떤 논쟁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어느 것이 먼저였느냐에 대해서 아무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 것이 먼저냐에 대해서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닭이 먼저 라면 그야 당연히 달걀을 낳을 수 있지만 달걀이 먼저라면 달걀은 절대로 닭이 될 수가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달걀은 반드시 닭이 적당한 온도에서 적당한 시간 동안 품어 주어야만 부화가 되고 병아리가 되는 까닭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두면 썩어 버리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닭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지구상에 있는 모든 종류의 동물의 최초의 조상들은 모두가 한 쌍의 똑같은 모양의 성숙된 어미들이 먼저 생겨나지 않고는 지금의 동물 후손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최초의 어미들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고는 생겨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최초의 어미들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고는 생겨날 수가 없으므로 우리 인간들은 그 만든 자를 '창조주' 또는 '조물주'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창조주께서 흙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고 만물의 영장으로서 자연을 다스리며 살아가도록 하심으로 이 세상의 역사(歷史)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을 것이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진행 과정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역사의 진행 과정 속에서 이 순간 살고 있으며 그 목적이 모두 이루어지면 창조의 대상은 영원 속으로 들어갑니다. 결국 인간이 죽으면 육체는 흙으로 되돌아가고 그 영(靈)은 창조주께서 도로 찾아가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 분 '창조주'께서는 '영혼'을 사람의 육체에 넣었다가 도로 찾으시는 것일까요? 거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은 그 이유를 반드시 알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47 사람은 영생을 얻으러 세상에 왔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도서 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지으셨는데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이 되면 시원한 수박이나 참외 같은 과일이 있습니다. 여름 과일은 열량이 적으며, 사람이 땀을 많이 흘리므로 수분을 공급받으라고 수박 같은 과일 속에 물기도 많습니다.
그리고 부패하기도 쉬우므로 빨리 먹어 없애야 합니다. 가을의 열매는 겨울에 두고 먹을 수 있도록 저장이 가능하며 밤 호도 같은 것도 있으며 겨울양식을 주십니다. 그것이 떨어지면 또 이듬해에 새 것을 주십니다.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이치에 합당하게 잘 만드신 것입니다.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지으신 하나님이 사람에게만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는데, 무엇이든지 사모하는 마음이 있을 때는 그 대상이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목이 마르면 갈증을 해소하는 물이 있고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이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젖을 찾습니다. 젖이 있는지도 모르고, 젖 빠는 방법은 배우지 않았지만 젖을 찾습니다. 어린아이에게 젖을 빨아먹고 싶어하는 마음을 하나님이 주셨으며 그 어린 아이가 엄마 품에 편안히 안겨 빨 수 있는 젖을 엄마 가슴에 달아주셨습니다. 온도와 양분과 맛도 그 아이에게 가장 적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같은 엄마 젖이지만 금방 낳은 아이와 백일 된 아이, 열 달된 아이가 먹는 젖의 영양이 각각 다르다는 연구보고가 발표되었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솜씨입니다.
사춘기가 되면 이성(異性)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고 짝이 있습니다. 사모하는 마음이 있을 때에 반드시 대상이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요구가 있으면 그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대상이 있습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람에게는 영원히 살 수 있는 영이 있고, 영원한 세계가 있고, 영원한 진리와 영원한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영원하고 완전하고 거룩한 그 세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주시려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고 영원한 것을 추구할 수 있는 마음도 주신 것입니다.
영원히 영원히 그대와 살고 싶소.라는 노래가 있듯이 사람 속에는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려는 욕구가 있습니다. 사람은 영생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무엇을 하러 왔습니까?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으러 왔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왜 오셨습니까? 인간 세계에서 영원한 하나님께로 나가는 길을 열어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 14:6)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생으로 나아가는 길, 그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이 성경에서 진리를 깨달으면 생명입니다. 우리는 그 길을 찾으러, 그 진리를 깨달으러, 그 영원한 생명을 얻으러 왔습니다. 다른 것은 혹 잃어버리고 양보할지라도 주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영원한 생명은 잃지 말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아마 앞으로 몇 십년 안쪽에 이 세상에 한사람도 없게 됩니다. 이 세상을 떠나 영원한 곳에 가 있게 될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하나님을 만나서 심판을 받고 그 다음에 영원한 곳으로 갑니다. 천국도 영원한 곳이고 지옥도 영원한 곳입니다. 천국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영광을 누리는 곳이고 지옥은 세세토록 마귀와 함께 고통 받는 곳입니다. 빛과 어두움, 생명과 죽음, 진리와 거짓, 행복과 불행이 영원히 나눠지는 그 두 곳 중 한 곳으로 가야 합니다. 곧 주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음으로 천국에 가든지 영원한 생명을 잃음으로 지옥에 가든지 둘 중의 하나를 결정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디로 가시렵니까!
여러분들은 영원을 어디서 보내시렵니까! 이 육신이 몇 십년 사는 것을 위해서는 그렇게 애쓰고 고생하고 준비하고 그것은 당연한 줄 알면서 왜 영혼을 위해서는 준비하지 않습니까! 이 세상의 몇 십년은 영원한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 과정입니다. 오늘 이후에 내일이 있듯이 금세 후에 내세가 있습니다. 오늘은 내일을 위한 준비입니다. 영원한 세계로 나아가는 길을 발견하러 왔고 그 길을 발견한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48. 인간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음 대저 우리는 다 부정(不淨)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義)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 가나이다(이사야 64:6). 우리는 다 부정한 자, 즉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사람이 죄가 더럽다는 것은 다 알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인간의 의(義)도 더럽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인간의 의(義)조차도 하나님 보시기엔 죄와 마찬가지로 더럽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행하는 선, 인간이 행하는 의로운 행동도 하나님 보실 때는 옷은 옷인데 더러운 옷입니다. 그 더러운 옷으로는 자기의 부끄러움을 가릴 수 없습니다. 사람 속에는 타락된 마음, 양심의 부끄러움,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한 죄책감 등이 있습니다. 그래서 선한 일을 하면 죄에 대한 양심의 부끄러움과 가책 감이 없어질 줄 알지만, 그것은 더러운 사람이 더러운 걸레 조각을 걸치고 자기 수치를 가려보려고 하는 것과 같이 쓸 데 없는 짓입니다.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과 같아서 결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가리지 못합니다.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창세기 3장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善惡果)를 따먹고 난 후, 벌거벗은 수치를 발견하고 무화과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입은 내용이 나옵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창3:7). 아담, 하와 두 사람 밖에 없었지만 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인간이 최초로 만든 옷은 동물들에게 자신들의 벌거벗은 모습이 부끄러워서도 또 추워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죄에 대한 수치를 가려보려고 옷을 만든 것입니다. 날이 서늘할 때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부르셨고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시자, 아담이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창세기 3:8-10).
아담과 하와는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었는데 벗었다고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낮에 선악과를 따먹고 무화과나무 잎사귀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런데 낮 햇볕에 금방 잎이 마른 데다가, 왔다 갔다 하면서 앉았다 일어섰다 몇 번 하니까 나뭇잎 옷이 다 부서져 버렸습니다. 저녁 때 하나님이 부르실 때쯤 해서는 줄기만 앙상하게 남았었을 것입니다. 입기는 입었지만 실은 벗은 것입니다.
인간이 행하는 모든 선행과 열심은 마치 무화과 잎사귀로 치마를 만들어 자기 수치를 가리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무화과가 옷이 되지 못했다는 것은 인간이 행하는 윤리 도덕과 종교생활, 그리고 인간의 모든 의로운 행동들이 자기의 죄에 대한 부끄러움을 덮지 못함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우리의 선행과 열심으로도 우리의 죄악을 가릴 수 없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지옥까지 몰아갑니다. 이 운명을 아무도 피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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