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로다, 소경된 인도자여
글/김병덕 목사
마태복음23:16-22절을 보면 “화 있을찐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찌라 하는도다 우맹이요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금이냐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찌라 하는도다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예물이냐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복과 화가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면 이 둘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온 사람에게는 반드시 이 복과 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복을 받은 사람보다는 화를 당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알라야 하는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은 복만 받을 줄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화를 더 많이 당합니다. 교회에는 나와 있지만 실제 그들이 천국의 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지극히 적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는 성경을 바로 해석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바로 해석을 하면 그것을 깨닫게 되고 어떻게 하든지 복을 받기 위해서 진리를 사모할 텐데도 그렇게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문제는 성경을 보는 시각입니다. 성경을 누가 보는가 하는 것조차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을 세상 사람들이 보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 중에 복을 받을 사람이 있고 화를 당할 사람이 있다는 것을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석을 합니까? 교회에 나온 사람을 복을 받고 세상에 있는 사람은 화를 당하는 것으로 해석을 하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그들에게는 없습니다. 교회만 들어오면 복을 받은 것 같이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 심각한 문제가 되고 그들이 진리를 알아 가는데 있어 방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교회에 나오면 모두가 복을 받을 수 있는 것 같이 미혹을 하고 있고 그것이 진리를 아는데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제 겨우 광야에 들어와 있는 것인데 마치 교회에 들어오면 가나안에 들어간 것으로 오해를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광야입니다. 결코 구원의 방주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가나안에 몇이 들어갔는가를 성경이 우리에게 경계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교회라는 광야 생활을 하면서 과연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있겠는가 하는 것을 냉정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물론 광야에 나온 그 사람들이 다 믿음을 가졌다면 분명히 가나안에 다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예표로 보여 주셨습니다.
분명히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이 믿음의 비밀을 알고 있는 성도가 지극히 적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애굽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나왔지만 이 믿음의 비밀을 알고 있었던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 뿐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실제 믿음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주 적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다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믿음이 있는 사람이 지극히 적었던 것 같이 이 시대도 역시 믿음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 적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깨달아야 하는데 자기들이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면 마치 믿음이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가라지가 세상 사람입니까? 세상 사람을 보고 가라지라고 하지 않습니다. 악인이 세상 사람입니까? 세상 사람을 보고 악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은 죄인은 될지언정 악인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반대하면 악인이라고 하고 있고 비판을 하면 원수로 대하고 있습니다.
시편37:40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저희를 도와 건지시되 악인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연고로다”
다윗의 시입니다. 이 악인이 누구입니까?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 이스라엘 안에서 진리를 대적하고 있는 사람들이 악인입니다. 이 악인은 사실 사람들이 볼 때는 의인의 모습으로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눈에는 정말 의인과 같이 보이는 그가 악인이라는 말씀입니다.
누가 악인이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이스라엘은 악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했고 또 사람들도 그들이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했지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교회 안에 있는 악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행위들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누구입니까?
그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바로 악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꿈에도 자기들이 악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소경된 인도자들은 자기들이 악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어떻게 하든지 은혜 되지 못하게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모릅니다. 사실 육을 가지고 있는 인생에게 있어 영의 일은 너무도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오셔야지 성경을 통해서 영의 일을 알게 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진리를 알지도 못하고 또 영의 일과 육의 일에 대해서 깨닫지를 못하기 때문에 자기는 악을 행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선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다수가 악인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악인이라는 것을 바로 깨닫고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가를 지혜를 구해서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들이 교회에 있다는 그 자체로 의인이 된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고 교회 안에 있는 자기를 보면서 마치 가나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모릅니다. 마태복음25장에서 양과 연소의 비유를 보아도 자기가 의인인지 악인이지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그런 말씀들이 다 기록이 되어 있지만 교회라는 거대한 종교에 미혹이 되어서 자기가 누구인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속습니까? 눈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속고 있습니다. 눈으로 보지 않은 사람은 속을 가능성이 아주 적습니다. 그러나 눈으로 본 사람은 자기가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 본 것을 확증으로 삼아 속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안 보고 속는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속을 때는 자기가 눈으로 직접 확인을 했기 때문에 속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악인을 바로 분별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 악인이 사람의 눈에는 너무도 의로운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악인에게 미혹을 당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이 악인이 악인으로 보이면 참 좋은데 참 하나님의 선지자와 같이 보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교회 생명과 복만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안에 있으면서도 진리를 바로 보지 못하는 소경은 사망과 화가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이렇게 소경된 인도자들이 더 많아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고 그들이 화를 당하고 있지만 소경의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소경된 인도자가 참 하나님의 사람으로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화가 언제 당합니까? 욥과 같이 생전에 화를 당하면 그나마 깨닫고 회개를 할 수 있는데 죽을 때가 되어도 그 화를 깨닫지 못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이 어떻게 화를 당하는 가를 잘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슬피 웁니까? 자기가 억울하게 당하지 않았다면 슬피 울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는 정말 잘 한다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화를 당하게 되어서 슬피 울게 된 것입니다. 이 시대 다수도 이렇게 화를 당하게 될 것이 너무도 분명하지만 그들은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자기들은 교회에 잘 다니고 있어서 생명의 복을 받을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소경입니다. 누가 소경입니까? 눈을 뜨고 있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을 성경은 소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짜 앞을 못 보는 사람이 소경이 아니라 진리를 바로 분별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소경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보아도 그 안에 담겨져 있는 뜻을 모르고 그저 육적인 생각으로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소경입니다.
얼마나 비참합니까? 자기는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는데 죽어서 보니까 화를 당한다면 그것은 너무도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진리에 대해서 거의 모든 사람이 소경이다 보니까 모르고 있습니다. 악을 행하면서도 자기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선하고 의롭다고 하는 거의 모든 행위가 다 악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말 사람의 이성으로 볼 때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다고 하는 그 일이 악에 열심을 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게 진리에 소경이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고도 모릅니다.
아니 자기들의 일이 아닙니다. 화를 당할 사람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지 이 시대를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주여 주여 하고 있는 자기들은 아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화를 당할 사람이라는 것을 꿈에도 모르고 악을 행하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에 비하면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도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행위에 빠져 있었고 자기들은 진심으로 믿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 이 시대 교인들만이 진심이라고 생각을 합니까? 이스라엘도 하나님에 대해서 진심이었습니다. 그런 진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황되다는 것을 이 시대 교인들이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내가 진심으로 믿고 있습니까?
그 진심은 내가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진심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하신 일을 진심이고 아니 고가 어디 있습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십자가를 꼭 진심으로 믿어야 합니까? 그것이 아니라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진심이라는 것으로 자기의 진심을 나타내고 있으면서 행위에 빠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악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악에 안 빠질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사람은 악에 안 빠질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정말 악이 무엇이라는 것을 아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악에서 건져 내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가 막힐 웅덩이에서 우리를 건져 내 주신 것을 알고 그 은혜가 얼마나 크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은혜입니다. 이 시대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같은 사람들에게서 우리를 건져 내셔서 악에 빠지지 않게 하신 것은 은혜입니다. 그것은 오직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만이 알고 있습니다. 정말 이 악에서 우리 스스로 나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구하시기 바랍니다. 나를 악에서 건져내 달라고 구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해주셔야지 되는 일이지 우리 인생의 힘으로는 안 됩니다. 사실 악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도 이 악에서 스스로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악을 행하기를 즐겨하면서 스스로 화를 자초하고 있습니다.
화를 당합니다. 세상 사람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당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화를 말씀을 하실 때 누구에게 하셨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이 시대 교인들이기도 합니다. 내가 화를 당할 사람인가 축복을 받을 사람인가를 바로 분별을 해서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화 있을찐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찌라 하는도다”
화 있을찐저 소경된 인도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인도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인도자가 소경이면 화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제사장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 당시 거의 모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과 제사장들은 소경이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으면 지금과 함께 생각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당시 바리새인과 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어떠했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 당시에 지도층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화가 있다는 것은 이 시대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합니다.
소경된 인도자입니다. 바리새인들만 소경된 인도자들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도 역시 소경된 인도자들이라는 것을 깨닫는 지혜가 여러분에게 있어서 화를 피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말씀을 보고 마치 그 당시 바리새인의 일로 치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당시 바리새인들은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목사들입니다.
소경입니다. 이스라엘은 다 소경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만 그렇고 지금 이 시대는 지혜가 있어서 소경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면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이런 말씀들이 있으면 지금도 역시 똑같은 상황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성전으로 맹세를 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를 하면 지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가지고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금을 말씀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맹세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무엇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성전이 무엇이고 금이 무엇입니까? 암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금을 헌금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헌금을 하는 것에 대해서 강요를 하는 교회들을 보면서 자기들은 그렇게 강요를 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금이 헌금도 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2:21절을 보면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이스라엘의 육을 가르쳐 우리의 영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성전이 무엇인가를 몰랐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이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성전으로 맹세를 하면 아무 일도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 성전으로 맹세를 어떻게 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성전을 모르다 보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믿음은 맹세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지만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니 믿음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성전으로 누가 맹세를 했습니까? 믿음이 있는 성도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을 들어도 아니 믿는다고 해도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아무 일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비밀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아무 일 없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믿음에 대해서 소경이었는가를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면서 믿음이 없는 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2:9절을 보면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성전에 있는 금으로 맹세를 하면 지키라고 합니다.
성전에서 행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지키라고 했다는 말씀입니다. 성전에서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제사의식이라든지 행위라든지 그것을 하겠다고 하면 반드시 지키라고 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믿든지 말든지 하고 율법의 행위에 대해서는 반드시 지키라고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성전을 몰랐기 때문에 믿음의 비밀도 몰랐고 그저 율법의 행위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성전으로 맹세를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그것을 이해를 못하니까 아무 일 없다고 하고 율법에 대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소경입니까? 그러나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비밀을 모르다 보니까 다 행위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내야하고 주일을 지켜야 하고 또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외식적인 것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성경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도신경을 반드시 예배 때 외워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우맹이요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금이냐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우맹합니다. 그리고 소경들입니다. 이리석고 소경된 인도자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금이냐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크냐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행위가 크냐고 묻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이 시대도 소경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자기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그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느냐 아니면 율법의 행위를 지켜야 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도 우맹한 자들이 많아 율법의 행위를 지키라고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유다서1:20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지극히 거룩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성전 된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다 보니까 성전의 금으로 맹세를 하면 지키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금이 크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 크냐고 묻고 있습니다.
영생의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큽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율법을 온전히 이루셔서 우리를 거룩하게 해 주셨습니다. 지금 그 말씀을 바리새인들에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이야 주님이 성전이 된 줄 모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이 시대는 주님께서 성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믿음을 저버리고 율법의 행위를 지키라고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우맹합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어리석은 가를 깨우쳐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역시 너무도 어리석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에 들어왔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데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는 어느 것이 크냐는 말씀은 어떻게 해야 너희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묻고 있는 말씀입니다.
화가 있습니다. 성전이 큰지 그 위에 있는 금이 큰지를 모르고 있는 사람은 화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행위에 빠져 있는 인도자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인도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에 새로 신도가 하나 들어오면 그에게 행위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는 사람은 다 소경이요 우맹한 인도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목사만이 아닙니다. 교회는 늘 새로운 교인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믿음을 가르치는 사람이 있고 행위에 대해서 가르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서 행위에 대해서 가르치는 사람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르면 가만히 있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진리에 대해서 믿음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더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인 하나가 들어오면 성전으로 맹세를 하는 것은 아무 일도 없다고 하고 성전에 있는 금으로 맹세를 하면 그것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생명을 얻는데 있어서는 반드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찌라 하는도다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예물이냐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제단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의 성전 안에는 번제단이 있습니다. 이 번제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 일 없다고 말을 하고 있고 그 번제단 위에 있는 예물은 반드시 드려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큽니까? 성도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기를 원치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번제단 위에 있는 예물을 반드시 지키라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똑같이 하고 있습니다.
예물이 아닙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전혀 모르고 있고 그저 제단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를 하면 그것을 지키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소경이 되었던 것과 같이 이 시대도 역시 소경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너무 몰랐기 때문에 자기들이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면서도 그 번제단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예물에 대해서 반드시 지키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단번에 드리셨습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제단 위에 있는 제물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번제단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번제단의 의미를 모르고 그 예물로 거룩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드리고 있는 제사로 거룩해 지려고 하고 있고 그런 제사적인 행위를 보고 거룩하다고 하면서 그것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으로 열심을 내서 지키고 있습니다.
제사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제사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고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거룩해 지는 것을 모르고 자기들이 드리고 있는 제사가 거룩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주일이 거룩하다고 하고 있고 교회가 거룩하다고 하고 있고 아니 거의 모든 제사를 거룩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아니 지키고 있는 그것으로 거룩해 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성전에서 드리고 있는 제사로 거룩해 질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그 제사를 너무도 거룩하게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이 아니라 번제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소경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의 일을 모르면 그는 소경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들의 육의 행위를 보고 그것을 행하는 것을 보면서 영의 일을 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대도 무엇으로 거룩해 져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 속죄 제물이 되신 것을 예표 하는 것이 바로 번제단이고 그것이 십자가를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제단으로 맹세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이 제단으로 맹세를 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를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단 위에 있는 모든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알고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고 또 우리 죄를 단번에 없애 버리셨고 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얻어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고 또 거기서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믿으라고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지를 못하니까 믿을 수 없고 그러다 보니까 제단의 예물이 크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서 교회가 점점 제사에 빠져들어가고 있습니다.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성전으로 맹세를 하고 있습니다. 이 성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다고 맹세를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성전으로 맹세를 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명세를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거기 거하시겠다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맹세를 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시는 하나님으로 맹세를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요한복음에서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전으로 맹세를 하면 그 안에 계시는 하나님으로 맹세를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명세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너희는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성도가 맹세를 해야 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다는 그것입니다. 이 시대도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다고 맹세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믿음에 대해서 맹세를 하고 있는 성도는 하나님께 맹세를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또 하늘로 맹세를 합니다. 하나님 보좌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를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맹세는 단 한 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겠다는 그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스라엘은 성전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몰랐습니다. 아니 지금도 성전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믿음을 모르니까 어떻게 됩니까?
지금도 교회 안에 들어오면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다고 맹세를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잘 지키겠다고 명세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켜서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는데도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과 무엇이 다릅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들은 바리새인과 다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에 너무도 열심을 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지키겠다고 맹세를 하고 있으면서도 바리새인이 지키는 것은 율법이고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들은 믿음이라는 이상한 주장들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 외에 어떤 방법으로도 구원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예수그리스도도 믿고 그리고 행위도 잘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단의 계략에 모두가 넘어가 있으면서도 그 일을 하는 자기가 믿음이 좋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전으로 맹세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예수가좋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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