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마 5:20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는 무엇일까?
마 5:20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는 무엇일까?
변승우 목사의 해석은 비성경적, 성경 말씀 참 의미 놓쳤다
글 /이인규 권사
한국장로교총연합회 협동상담위원
네이버 카페 '무엇이든물어보세요/운영자 대림감리교회 권사
마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본문에 대해서 변승우 목사(큰믿음교회)의 주장을 먼저 들어보자.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20). 그런데 어떤 이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는 의라고 생각합니다. 즉 예수님의 피의 공로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절대 아닙니다. 분명 예수님은 ‘너희 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이 말씀의 전후문맥을 보면 더욱 명백해집니다. 율법은 폐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의입니다. 그런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문자만 이해하고 있었고 따라서 행동으로만 지켰습니다.
“서기관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를 갖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뭐가 필요해요? 너희 의가 필요하다고 그랬어요. 잘 들으세요.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여러분 예수 십자가를 통해서 믿을 때 받는 그 의가 아니예요.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의입니다 . 너희 의가 서기관,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너희가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변승우, 2004년 5월 27일 S교회 집회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지 말라, 이것이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이에요. 간음하지 말라, 창기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다고 해서 깨끗한 것이 아니고, 이웃집 여자와 불륜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깨끗한 것이 아니고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맹세가 필요없을 정도로 진실한 사람이 돼라. 너희가 예하면 예하고 믿어 줄 수 있는 사람, 너희가 아니라면 아니라고 믿어 줄 수 있는 사람, ··· 너희는 그렇게 진실한 사람이 돼라. 원수가 핍박할 때도 사랑하라. 믿습니까? 이것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예요. 여러분 이해하세요? 너희가,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말씀하시고 주님께서 보여 주시고 해석해 주신 것입니다. ···
여러분 이것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라면 만일에 이렇게 살지 못하는 자는 지옥에 간다는 말이 아니겠어요? 그쵸? ‘아니 목사님, 그렇게 살지 못하는 자가 정말 지옥에 가는 겁니까?’ (언성을 높이며: 녹취자 주)정말 지옥에 갑니다!!! (목청을 더욱 높이며: 녹취자 주)정말 지옥에 가요!! 목사라도 지옥에 가고!! 아홉 가지 은사를 다 받았어도 지옥에 가고!! 평생을 교회 다녀도 지옥에 갑니다. 예배당을 지어서 바쳐서도 지옥에 갑니다 !!!”(변승우 목사, 2004년 5월 27일 S교회 집회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변승우 목사는 마태복음 5장20절의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나은 의”를 “그들보다 더욱 철저하게 지키는 의”라고 해석하여, “행동뿐 아니라 마음으로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렇지 못하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변승우 목사는 성경을 전혀 잘못 해석하고 있다.
그와 비슷한 일련의 주장들을 변승우 목사의 책을 통하여 볼 수 있는데, 다음과 같다.
“천국에는 예수 믿는 모든 사람이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 말씀대로 산 사람만 들어갑니다”(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71쪽).
“왜냐하면 예수님은 여기서 손, 발, 눈 즉 여러 가지 죄를 지어야만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한가지라도 끊지 못한 죄가 있다면 그 죄와 함께 지옥에 던져진다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지옥에 가는 크리스쳔, 27쪽).
“그런데 ‘보기는 보아도 보지 못한다’는 말씀 그대로 복음서를 읽을 때에 수없이 이런 부분들이 나오지만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신학자와 목회자와 신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직 믿음’이니 ‘은혜로 받는 구원’이니 하면서 사실은 자기들이 사용하는 단어들의 의미조차 제대로 모르면서 주의 진리를 대적합니다”(아무도 너희를 대적하지 못하게 하라, 87-88쪽).
“그저 예수를 믿고 입으로 고백하면 구원받는다는 이것은 본래 이단 사설입니다. 이 이단사상이 이제는 교회 안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들어와 가지고 거짓선지자들의 입술을 통해서 번지고 번지고 번지다 보니까 교회 내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진리인 줄 알고 있어요. 그것이 진리라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씀은 거짓입니까? 행함이 없는 믿음은 거짓믿음이라고 했던 야고보는 거짓사도입니까?”(변승우, ‘거짓선지자들을 삼가라’, 2006년 5월 26일 설교).
변승우 목사의 마태복음 5장20절의 해석은 그가 늘상 주장해왔던 행함의 주장과 전혀 다른 뜻이 아니라고 보여진다. 그렇다면 본문을 다시 살펴보자.
마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 성경구절이 과연 무슨 뜻일까? 과연 변승우 목사가 주장하듯이 율법은 폐하여지지 않았으므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율법의 행함을 잘 지켜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뜻일까? 율법을 행동뿐 아니라 마음까지 더 철저하게 행하는 것이 천국에 가는 것일까? 한마디로 변승우 목사는 신학적인 뿌리가 없으며, 성경적인 지식이 매우 부족한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왜 이런 엉뚱한 해석을 하면서 오히려 2000년 기독교의 정통신학적인 해석을 통째로 비난하는 무모함을 저지르고 있을까?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는 법이다. 이 성경본문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앞의 구절을 먼저 이해하여야만 한다. 마 5: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왜 앞의 성경본문 19절은, 20절과 달리 지극히 작은 계명 하나라도 버리면 천국을 가지 못한다고 말하지 않고,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고 일컬음을 받는다고 하고 있을까? 누구라도 알다시피, 그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 지극히 작은 계명 하나라도 버리면 안된다고 주장하는 철저한 율법주의자들이었다. 바리새인은 가장 엄한 종파 중에 하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행26:5)
그렇다면 지극히 작은 계명을 버리면 안된다는 엄하고 철저한 율법주의자들은 천국에 가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작은 계명을 버리라고 하며, 또 버리라고 가르치는 자들은 (비록 지극히 작다고 일컬음을 받지만) 여전히 천국에 있을까? 지극히 작은 계명도 행하며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도 크다고 일컬음을 받게된다. 그러한 작은 계명까지 모두 행하고 가르치는 자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천국에 갔을까?
마 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오하려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회칠한 무덤(마23:27), 지옥 자식(마23:15), 소경(마 23:26)이라고 강한 비난을 하셨다. 과연 누가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율법을 더 철저하게 잘 지킬 수 있는가?
예수님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를 특별히 지칭하신 이유는 그들이 율법을 잘 지키고 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변승우 목사는 과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보다 더 철저하게 율법의 의를 행할 수 있는지 양심껏 이야기하여 보라. 변목사는 마음 속까지 철저히 지키는 율법의 의를 지켰는가? 그렇지 않다면 변목사 자신도 천국에 가지 못한다.
예수님이 그들보다 더 나은 의를 말씀하신 이유는, 율법의 의로는 천국에 갈 수 있는 자가 하나도 없다는 반어법적인 강조적 표현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롬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으며 하나도 없으며···.
분명히 문자적으로 볼 때에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보다 나은 의를 요구하셨다고 해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변승우 목사는 문자적인 내용만을 이해하고 있을 뿐, 성경이 뜻하고 있는 의미, 즉 “율법의 의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하여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엄격한 율법의 “의”의 기준으로는 아무도 천국에 갈 수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벧전 4: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베드로는 의인만이 구원을 얻으면 죄인은 어떻게 구원을 얻는가를 반문하고 있다. 즉 사도 베드로는 의인만이 겨우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변승우 목사의 주장대로 하면 단 한명도 천국에 갈 수가 없다는 뜻이 되며, 그는 성경과 전혀 다른 복음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과연 누가 바리새인이며 누가 성경을 엉터리로 가르치는가? 과연 변 목사 자신이 주장하듯이 자신이 성경해석의 다림줄을 갖고 있을까? 변 목사는 과연 성령이 성경 해석을 가르쳐 주는 것일까?
갈 3:24-25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율법의 기능은 율법의 행함으로는 의롭다함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함으로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도하는 몽학선생(가정교사)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 설계도면은 집을 짓기 위한 기능이며, 집을 다 짓고 난 후에는 필요가 없다. 이정표는 길을 찾기 위한 기능이며, 도착을 한 후에는 필요가 없는 것이다. 즉 설계도면과 이정표의 기능은 최종적인 목적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어떠한 사람이든지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함을 얻을 수가 없으며, 그 기능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에 있다. 즉 율법은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기능이며, 그래서 예수에게로 인도하는 이정표가 되며, 설계도면이 된다. 율법은 물론 그러한 이차적인 기능이 있음으로 인하여 폐하여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율법은 예수가 옴으로서 완성되어진 것이다,
약 2: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어떤 사람이 율법을 99가지를 잘 지켰다가 실수로 1개를 어기면 그는 죄인이 되고 만다. 그러나 예수 십자가 이후에 많은 죄를 지은 사람도 믿음으로 인하여 의인이라고 불려진다.
본문을 다시 살펴보자
마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는 엄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율법의 의를 행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율법의 의가 아니라 예수를 믿는 믿음의 의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반어법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함을 얻는 기능은 폐하여졌지만, 죄를 깨닫게 하는 기능으로서는 완성되어진 것이다.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은 율법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고 알고 있는 자들에게 더욱 엄하고 더욱 철저한 율법을 지속적으로 요구하신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는 마태복음의 대상이 바로 율법주의자였던 유대인 독자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고 알고 있었던 율법주의자들에게 그 율법의 기준을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살인을 하는 자가 심판을 받는다고 율법은 말하지만, 형제에게 노하는 자가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하신다. 율법은 간음을 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마음 속에 음욕을 품어도 안된다고 하신다. 오른 눈과 오른 손을 빼라. 맹세도 하지 말라.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돌려대라. 속옷을 가리려는 자에게 겉옷도 주라.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이 모든 예수님의 말씀은 실제로 그렇게 하여야만 천국에 간다는 것이 아니라, 율법으로는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즉 예수님이 요구하는 율법의 잣대는 더욱 엄격한 것이며, 그 기준으로는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고 믿는 자들은 내가 말한 것까지 모두 지켜라. 너희들이 지킬 수가 있다면, 율법은 폐하여진 것이 아니니 더욱 철저하게 지켜라”
예수님은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강조적인 표현을 사용하시고 있다. “결단코”(우크)라는 헬라어는 절대부정을 뜻하는 부정불변사이며, 예수님은 율법의 의로는 아무도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하심으로 율법주의 자체가 잘못된 것이며, 결론적으로 믿음으로 얻는 의, 오직 은혜를 얻는 구원을 역설하고 계신다.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완전케하다”는 “가득차게 하다, 완성하다. 성취하다”는 의미이다. 본문을 해석하려면, 구약의 말씀을 성취하신 예수님을 이해하여야만 한다. 다시 말하여 “그림자인 율법”과 “실체가 되시는 예수의 성취”를 우리는 이해하여야만 한다. 바로 앞의 본문에서 예수님이 곧 율법의 완성이며 실체가 되신다는 뜻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더 율법을 잘 지켜야만 천국에 간다고 해석할 수 없음도 깨달아야만 한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말씀하신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여야 한다. 예수님 자신도 그들이 철저하게 율법을 행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기 때문에, 고의적으로 그들보다 나은 의를 요구하신 것이다.
우리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나을 수 있을까? 만약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그 의로 천국에 갈 수 없다면, 율법의 의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 말씀을 누가 하고 있는가? 바로 유일한 구원의 길이며,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국에 갈 수 있는 의”란 무엇일까? 아직도 그것을 더욱 철저한 율법의 행함이라고 해석한다면 그는 소경이다. 과연 간음을 하지 말아야만 된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음욕조차 없어야만 천국에 갈 수 있을까? 과연 오른눈을 빼고 오른손을 잘라야만 천국에 갈 수 있을까?
과연 단 하나의 죄라도 끊지 못하면 지옥에 들어갈까? 우리는 바로 예수가 그림자인 율법을 완성시킨 실체이며 성취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예수님이 “지극히 작은 계명도 버리지 말라”는 것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더 많은 계명을 지키라는 뜻이 아니다. 예수님은 그림자이며 예표가 되는 “의”가 아니고, 더 포괄적이고 내면적인 믿음의 “의”를 요구하신 것이다.
마 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믿음으로 얻는 "의"는 율법으로 얻는 "의"보다 나은 "의"가 된다. 예수님은 우리의 더 좋은 언약의 중보가 되시기 때문이다(히 8:6).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새로운 “언약”이시며 새로운 “의”가 되신다는 것을 우리는 잊으면 안된다.
과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율법을 지킴으로 얻는 "의"보다 더 철저하고 엄하게 율법을 지킴으로 얻는 "의"가 되어야만 천국에 간다고 해석을 할 수 있다는 변승우 목사의 해석관이 참으로 놀랍고 이상하다.
갈 5: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과연 우리가 믿음으로 얻는 "의"가 율법을 행함으로 얻는 "의"보다 부족하다는 것인가? 더욱 철저한 율법의 의를 주장하는 변승우 목사는 결과적으로 예수의 십자가를 부정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롬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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柱: 목회자들이 큰일이군요. 오직 예수그리스도로만 구원받는데 행위구원을 썩어버린 종교다윈주위도 모르고 인간의 義를 내세우니 주님께서는 우리를 안봅니다. 아버지는 예수그리스도만 통해서 바라봅니다. 십자가에서 죄를 다지시고 가셨는데 죄와 싸운다니 그러면 그것이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까? 죄는 과거죄나 현재 죄나 미래 죄나 다 지고가셨기에 그것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데 무슨말들을 하시는 것인지 본인들이 믿음없다는 말인가요? 아니면 같은 성경을 보는데 누구에게는 알게하시고 누구에게는 안보기게 하시나요? 성경을 똑바로 보게해 달라고 기도하세요. 잘모으면 목회자 타이틀 떼고서 ▶㉰-로마서 강해를 정독해 보세요.그러면 성경이 보일 것입니다. 변승우 목사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