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지식

[스크랩] 쉽볼렛과 십볼렛이 무엇인가?

끝까지주를위해 2010. 12. 5. 22:19

오늘은 쉽볼렛과 십볼렛이라 하라(삿12:1-7)에 대한 배경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입다와 에브라임 지파에 대한 말씀을 상고하자면 사사기 12장 1~ 7절의 말씀을 먼저 읽어야 합니다.

1. 에브라임 사람들이 동원되었다. 그들은 사본으로 건너가서 입다에게 말하였다. "너는 왜 암몬의 자손들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같이 가자고 우리를 부르지 않았느냐? 네 집을 너와함께 불태워버리겠다."2. 그러자 입다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내 백성과 더불어 암몬의 자손들과 격렬한 논잰을 벌이면서 그대들을 소집하였소. 그러나 그대들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해주지 않았소.3. 그대들이 구해 주지 않는 것을 본 나는, 목숨을 걸고 암몬의 자손들이 있는 곳으로 건너갔소, 그랬더니 주님게서 그들을 내 손에 넘겨 주셨소. 그런데 그대들은 어찌하여 오늘 이렇게 올라와서 나와 싸우러 드는 것이오?" 4. 그리고나서 입다는 길르앗 사람들을 모두 모아 에브라임인들이 평소에, "너희는 에브라임에서 도망간 자들이다. 길르앗은 에브라임과 므나쎄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하고 말하였기 때문에 그들을 쳐죽였다. 5. 그리고 길르앗인들은 에브라임으로 가는 요르단 건널목들을 점령하였다. 도망가는 에브라임인들이 "강을 건너게 해 주시오."하면, 길르앗 사람들은 그에게 " 너 에브라임인니냐?"하고 물었다. 그가 "아니오."하고 대답하면, 6.그에게 "`쉽볼렛`하고 말해봐,"하였다. 그 사람이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여 "십볼렛"이라고 하면, 그를 붙들어 그 요르단 건널목에서 죽였다. 이렇게 하여 그 때에 에브라임에서 사만 이천명이 죽었다. 7. 입다는 여섯 해 동안 이스라엘의 판관으로 일하였다. 그리고 나서 길르앗인 입다는 죽어 길르앗에 있는 자기 성읍에 묻혔다.

 출처:http://cafe.daum.net/ilmak

본문에서 한 형제인 이스라엘의 여러 지파들이 전쟁할 때에는 전혀 돕지 않다가 정작 이기고 나니까 "왜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반드시 불로 너와 네 집을 사르리라"고 시비를 걸며 협박하는 에브라임 지파를 봅니다. 기드온 당시에도 에브라임은 비슷한 행동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삿8;1). 에브라임이 이런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은 신약의 용어로 말한다면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에브라임 지파는 이스라엘 12지파중 가장 큰 지파였고 주도적인 지파였습니다. 그들은 항상 자기들의 장자권만 주장하였고 다른 지파가 어려울 때 돕지않고 있다가 마지막 순간에 공로를 가로채는 것을 즐겨하던 지파입니다. 지금 교회안에서도 남들이 해놓은 일들을 마치 자기가한 것처럼 행동하는 오래된 임원(제직)들의 문제를 성경에서 이미 말씀하신 부분이라 봅니다.

 

훗날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졌을 때 남쪽을 유다, 북쪽을 에브라임이라고 부를 정도로 에브라임은 부유하고 강한 지파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형제들이 전쟁을 할때 매번 돕지 않았고 뒤에 나타나 오히려 시비를 걸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일부분이라는 의식 결여와  하나님이 에브라임지파를 강성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밝히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대해 바르게 알지 못하는 자는 에브라임지파처럼 단독적이며 방자히 행하게 됩니다(잠29:18) 기드온이 미디안 연합군(삿6:33)과 싸울 때 빠진 지파는 에브라임 지파 외에도 여러 지파가 있었습니다.(삿6:35). 다른 지파와 달리 에브라임 지파는 전쟁의 끝에라도 싸움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삿7:24-25).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도리어 기드온에게 처음부터 부르지 않은 것에 대해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그들은 입다에게도 이와 유사하게 행한적이 있습니다(삿12:1). 에브라임 지파는 이스라엘 지파 중 가장 큰 지파이지만 또한 불만이 많은 분열적인 지파이기도 했습니다.

 

1.기드온과 입다
기드온은 이번 전쟁에서 하나님앞에서 전적으로 옳게 행했습니다. 사실 에브라임의 시비는 부당한 것입니다. 입다의 경우에는 에브라임과 논쟁하면서 그들을 쳐서 죽였지만(삿12:2-8), 기드온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이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자신을 낮추었고 겸손했습니다. 기드온의 반응이 입다와 달랐던 것은 그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높은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하나가 되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낮추었으며 그의  말에는 온유가 가득했습니다. 교회생활 안에서 문제가 있을 때 우리는 이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서로가 겸손하고 온유해야 함을 보게 됩니다. 년말이면 교회마다 이 교회 저 교회로 옮겨가는 신자들과 임원선출 문제로 골이 깊도록 싸움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때 더욱 우리는 예수안에 하나라는 것을 인식하여야 합니다.

 

사사기 12장 길르앗과 에브라임의 전쟁에서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사사기 11장은 길르앗과 암몬의 전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전쟁에서 입다가 이끄는 길르앗이 승리합니다.그러자 같은 동족인 에브라임 사람들이 입다에게 ‘왜 암몬과 전쟁할 때 왜 우리를 부르지 않았느냐’고 시비를 걸게 되고 결국 길르앗과 에브라임 사이에 전쟁이 벌어집니다.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전쟁에서 입다가 이끄는 길르앗 사람들을 이기게 했습니다.

 

전쟁에 져서 뿔뿔이 흩어진 에브라임 사람들이 요단강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요단강을 건너 집으로 도망가는데 입다는 나루터마다 길르앗의 군대를 배치하여 에브라임의 패잔병들을 잡아내 죽였습니다.여기서 길르앗 사람인지,에브라임 사람인지 구별해 내는 방법이 기가 막힙니다.길르앗의 군인이 배를 타기 위해 서 있는 한 사람에게 불쑥 ‘십볼렛'이라고 해보시오’라고 하면 길르앗 사람들은 그대로 '십볼렛'이라고 발음하는데 에브라임 사람들은 이 발음이 안되어 ‘쉽볼렛’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길르앗의 군대가 그를 그 자리에서 죽였습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이 자존심 싸움에서 4만2천명이 죽고 겨우 4백명만 남았습니다.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가족과 종족을 따라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에브라임 지파의 계수함을 입은 자가 사만 오백 명이었더라 [민1:32-33]

*이는 에브라임 자손의 종족들이니 계수함을 입은 자가 삼만 이천 오백명이라 이상은 그 종족을 따른 요셉 자손이었더라[민26:37]

 

2.에브라임 지파는 잘못된 자존심 때문에 이웃의 기쁨에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사사 입다가 암몬 자손과의 전쟁에서 대거 승리를 하고 돌아왔을 때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자존심이 강한 에브라임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쟁에 동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기쁨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대신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불평 불만을 늘어놓았던 것입니다. 잘못된 자존심이 강한 자들은 이와 같이 형제의 승리를 기뻐하기는 커녕 오히려 형제의 성공을 시기합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이스라엘 지파 중 가장 큰 지파였는데 그들은 이것 때문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생아들의 천한 신분으로 길르앗 사람의 머리가 된 입다가 자기들과 한 마디의 상의도 없이 암몬 자손과 싸웠다는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지만 자기들이 하지 못한 큰 일을 한낱 보잘것 없는 첩의 자식이 이루었다는 사실이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던 것입니다.

 

사실 입다는 그들이 같이 싸워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암몬 자손과 크게 다툴 때에 내가 너희를 부르되 너희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지 아니한 고로’(2절)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요청의 시기는 입다가 한참 전쟁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아마도 입다는 전쟁의 출전 전에는 그들을 부르지 아니하였으나 싸움에서 위급할 때 그들에게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에브라임 사람들은 전쟁하기 전에 그들을 부르지 않았다는 것으로 트집을 잡고 있는 것 입니다. 이것은 정말 유치한 자존심의 대립입니다. 싸움 중에 구원의 요청을 거절한 것이 두려움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감추고 다 싸워 이긴 후에 이러한 트집을 잡는 것은 상대방을 멸시하고 그 공을 가로채려는 파렴치한 행위입니다. 또한 그들은 자기들을 무시하였다는 대가로 "우리가 반드시 불로 너와 네 집을 사르리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어리석은 자존심은 타인의 성공에 대해 기쁨을 함께 하기는 커녕 시기하여 죽이고자 하는 악한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에브라임 지파는 상대방의 약점만을 바라보았습니다.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중에 있다’(4절)라고 한 말은 길르앗 사람이 본래 에브라임과 므낫세 사이에서 쫓겨다녔던 사실로 미루어 ‘도망자’라는 표현은 입다가 형제들의 핍박에 도망한 자라는 의미로서 이러한 언사는 입다의 약점을 감정적으로 표현한 치욕적인 언사였습니다. 이것은 입다와 길르앗 사람들을 심히 격분시켰습니다. 원래 길르앗 자손들은 므낫세 지파가 요단 동편과 서편에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므낫세 지파에 소속 되었지만 세월의 흐름을 통해서 한 지파로서의 자리를 굳쳐갈 만큼 성장한 지파였는데 그들은 한 지파의 자격이 없을 뿐더러 길르앗에서 이스라엘 사사로 입다가 추대된 것에 대한 에브라임의 불평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도망자라는 언사를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말은 전쟁에 참가하지 못한 약점을 지파의 권위로 감추려고 한 자존심의 결과입니다. 이로 인하여 에브라임은 입다와 길르앗 사람들의 공격으로 요단 나루터에서 사만 이천 명이나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결국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은 자기 자존심을 중요시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서 살아가는 우리는 주님의 말씀대로 자신을 부인하며 살아야 합니다.(마16:24)

 

4.약점을 건드리면

현대교회에서도 남의 아픔을 감싸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자존심 싸움을 하여서 서로가 상처를 입고 결과 좋지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남들보다 더 많은 은혜를 입었으나 희생의 자리에서는 언제나 빠져 버리는 에브라임은 입다의 칼에 지파의 절반 이상이 죽었습니다. 입다는 마음 속에 치료되지 못한 분노가 남아있었습니다.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쓴 뿌리가 있었습니다. 자녀 교육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어릴 때 부모로부터 사랑을 깊이 받아보지 못하면 마음 속에 분노가 남습니다. 그리고 그 분노는 어느 기회가 되면 폭발합니다. 사회적으로 출세하고, 공부를 해서 체면이 생기면 살짝 보자기로 덮어진 것처럼 숨지만 그것은 치료되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느날 자기가 체면과 자기의 절제의 한계가 도달하는 날, 그 보자기를 집어 던지고 분노가 폭발하게 됩니다. 입다의 분노는 에브라임 지파의 절반이 넘는 사람을 죽이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격한 감정이 생겨도 남의 약점을 건드리면 나쁜결과가 생길 수 있습니다.교회 안에 힘든 문제가 있어서 내 희생과 헌신이 요구될 때는 뒤로 물러서 있다가 막상 성사된 후에는 성취의 주인공들을 시기 질투하며 그들을 헐뜯는 잘못된 모습이 종종 보입니다. 시기하여 잘못된 말의 결과가 어떠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여, 비참한 결과를 낳는 잘못된 말을 버리길 바랍니다.

 

5.치유되지 않은 남아있는 분노까지도 치료해야 합니다.

사회적으로 출세해서 체면이 생겨도 치료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깊이 분노가 잠재하기 마련입니다. 가득 찬 쓴 뿌리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한 풀이하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치유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십자가가 중심되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 치료되지 못할 분노가 없습니다. 자기의 옆구리를 찌르는 군사들을 향해서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십시오, 분노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선과 악을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옳고 그른지 가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은 능력입니다. 죽이고 싶을만큼 미울때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 하십시요.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이 자기가 창조한 인간들에게 조롱과 배신을 당하던일을 기억하십시요.우리는 예수안에 한몸입니다. 형제의 아픔이 내아픔이 되야합니다. 헌신의 순간 내자존심을 버리고 먼져 손을 내밀어보세요. 그러하여야 진정한 성숙한 그리스챤입니다.扈ⓗ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일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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