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믿음

[스크랩]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가?

끝까지주를위해 2010. 6. 2. 00:16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했는데 여러분은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어떤 것이 행함이 있는 믿음이고 또 어떤 것이 행함이 없는 믿음인가를 바로 아는 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며 이것이 정립이 잘 되어 있어야 자신의 신앙생활에 자유함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야고보서 2장에 아브라함과 기생라합을 모델로 써놓은 구절은 그들이 무엇을 했기에 행함있는 믿음이라고 했는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출처:http://cafe.daum.net/ilmak

[야고보서 2장21절-26절]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크리스챤들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를 할 때 "예수 믿고 구원 받으세요" 라고 전합니다. 분명히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했는데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라는 성경구절을 읽게되면 흔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으면 행함이 나타난다'고 그럴싸하게 말합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위의 성경구절에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여러분 또한 본문 말씀을 수도 없이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게 되면 행함이 없으면 구원을 못 받는 것 처럼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한 한가지를 말씀하고 있는데  '예수를 믿어 의에 이르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을 얻는데 예수를 믿는 믿음 이외의 방법이 있는 것 처럼 성경을 해석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의 해석이 잘못 되었다고 저는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방법 저 방법 여러 가지를 사용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이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구원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어떤 것인가를 알려 주기위해 아브라함과 기생 라합을 표준으로 기록 해 놓았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이 두사람을 살펴 보면 과연 행함이 있는 믿음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러면 행함이 있는 믿음이란 무엇 입니까? 순종 하는 것 입니까? 율법을 잘 지키는 것 입니까? 만약 순종이라면 여러분은 과연 하나님 앞에 몇%나 순종 했습니까?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라면 율법을 얼마나 완전하게 지켰습니까? 노력하는 것 입니까? 노력하는 것으로는 될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서 자기가 노력해서 구원 받았다는  사람은 어느곳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1.기생라합이 행한 믿음이 무엇인가?

  기생 라합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백성을 인도하신 모든 사실을 소문으로 들어서 알았습니다. 하나님 밖에 참 신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비록 여리고 기생 이었지만 마음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신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내서 여리고城을 향해오고 쳐들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소문이 정말이라면 여리고는 분명히 멸망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갈망 했습니다. 그때 정탐꾼이 자기 집에 들어온 것 입니다. 우연히 들어 온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라합의 가정을 구원 하기 위해서 생명의 구원을 갈망하는 그 집에 정탐꾼을 그 집으로 인도 하셨던 것입니다. 사실 사람이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비록 기생 일찌라도 자기 생명을 구원 받기 원하는 기생에게 하나님은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라합은 믿음의 눈으로 그들을 알아 보았습니다. 만약 라합이 그들이 아니고 다른 방법으로 살수 있었다면 그들을 숨겨 주었겠습니까?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라합은 그들을 고발했을 것 입니다. 라합은 하나님의 능력을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리고는 망하고 이스라엘은 승리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도 죽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살수 있는 방법은 이스라엘 백성과 연합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정탐꾼을 숨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한 일을 가지고 성경에서는 행함으로 의롭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숨겨준 것이 행함 입니까? 맞습니다. 지금 라합을 선택해서 행함이 있는 믿음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믿음이 정말 본 받을 만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셉,다니엘,예례미야등등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기생 라합을 써 놓고 그는 행함으로 의롭다 했습니까? 우리는 그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과연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행함이 무엇이냐는 것 입니다. 


 기생 라합이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다 하니까 그녀가 정말로 무엇을 잘해서, 깨끗하고 의롭게 살아서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합니까? 사실 기생의 행위가 의로우면 얼마나 의롭겠습니까? 성경에는 우리가 라합에게 본받을 만한 어떤 행위도 기록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야고보서는 아브라함과 기생 라합을 같은 선상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생 라합이 행한 것을 아브라함과 비교 할만한 무엇이 있나요? 그 답은 바로 라합에게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라합은 생명을 얻기위해 정탐꾼들에게  '당신들을 숨겨서 살려줄테니 내 생명과 가족들의 생명을 보장해 달라,그리고 당신의 하나님 이름으로 맹세하고 증표를 달라" 하며 기생 라합은 증표를 요구합니다. 정탐꾼들은 라합에게 "비밀을 지켜라, 창문에 붉은 줄을 달아 매라, 그리고 가족들을 모두 한곳에 모아 두어라 그러면 반드시 구원해 준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서로간에 약속을 했고 그  약속을 믿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라합이 붉은 줄을 매달아 놓고 자기 친척 아는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우리 집에 오면 산다고 했습니다. 그걸 믿을 수 있겠습니까? 적군이 쳐들어 오는데 어느 집에서는 살고 어느 집에서는 죽는다면 그것은 허망한 말로 들렸을 것입니다. 노아의 때도 그랬고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 할 때도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라합은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 했습니다. 틀림없이 우리집에 들어오면 산다고 했습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와같이 지금도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면 산다고 하면 믿는 자가 있고 믿지않는 자가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여리고가 망할 때 라합의 집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자기 친척들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자기 친척들을 집으로 모을 수 있는 것이 바로 행함 입니다. 만약 우리집에 들어와도 혹시 죽을 수도 있다면 모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집에 오면 절대로 안 죽는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행함이 있는 믿음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 가지 입니다. 예수 믿는데도 혹시 지옥에 갈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예수 믿으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예수 믿으면 분명히 천국 간다는 것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담대히 전할 수 있는 것 입니다. 오히려 안 믿는 그들을 안타까워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행함이 있는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라합은 기생입니다. 또한 거짓말장이 입니다. 동족을 배신한 배신자 입니다. 그런 사람을 선택해서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생애에서 율법적으로 내세울 것이 있습니까? 율법적인 의는 하나도 없습니다 .기생이 무엇을 잘 했겠습니까? 아무것도 잘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의롭다 하는 사람들이 나오면 마치 그의 행위가 의로운 것으로 잘못 알게 됩니다. 기생 일하고 있는 사람이 의로우면 얼마나 의롭겠습니까? 하나님이 의롭다 할 때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행함은 율법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믿어져서 움직여지는 것이 행함입니다. 빨간줄을 달아야 산다고 하니까 달았습니다. 바로 빨간 줄을 달은 것이 행함 입니다. 믿음은 어떤 약속이 믿어져서 그 약속대로 행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것이 확신이 되면 행해 지지만 그것이 확신이 안되면 행할 수가 없는 것 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중요한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믿으면 천국갈 수 있습니다.

 만약 라합이 집에다 붉은 줄을 매달아 놓고 그 안에서 기생노릇을 한다면 살까요 죽을까요? 어떤 잘못을 해도 삽니다. 라합이 살수 있는 길은 붉은 줄을 달아 매는 것입니다. 그러면 붉은 줄을 달아 매지 않고 그 안에서 죄도 생각하지 않고 기생 하던 것 모두 치워 버리고 깨끗하게 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녀는 죽었을 것 입니다. 그렇게 해서 죽었다면 성경에 기록도 안되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라고 했을때 그것을 믿음으로 행하니 죽음이 건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정탐꾼과의 약속은 그 집에 붉은 줄을 매달고 그 집에 들어와 있는 것 이었습니다. 라합은 정탐꾼과의 약속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자기 스스로가 무엇을 잘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약속에 따라 움직인 것을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라합이 율법에 따라 움직여서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율법에 따라 움직인 것이 아닙니다.

 저도 어려서 부터 이 말씀을 너무도 많이 들었습니다 이것을 율법의 행함으로 알고 있어서 그것으로 인하여 많은 걸림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를 구원 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약속 했기 때문에 구원 하는 것 입니다. 라합이 율법을 잘 지켜서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비록 기생이지만 약속에 따라 행했기 때문에 살아난 것 입니다. 믿음은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상대방과 약속도 없는데 내가 혼자 열심을 내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율법을 잘 지켜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행했기 때문에 구원 받는 것 입니다. 그 행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에 라합을 이야기 한 것은 그 행함이 율법적이 행함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주기 위해서 입니다. 주님은 구약의 말씀을 약속대로 이루시고 가시면서 새로운 약속을 하시고 가셨습니다. 옛 언약이 이루어졌다면 새로운 약속이 또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하여 기생 라합과 온 가족은 구원받고 정탐꾼 중에 살몬과 결혼하여 보아스를 낳아서 예수님 족보에 들어가는 복도 받았습니다.(마1:5)

이번에는 아브라함의 행함있는 믿음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린 믿음
 아브라함은 백세에 얻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 번제로 드려야 합니까? 드리지 말아야 합니까? 이 아들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태어난 아들입니다. 율법에는 분명히 네 아들을 번제로 드리지 말라고 씌여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도 아들을 번제로 드려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물론 후에 율법이 기록 되었지만 기록되기 전 사람들도 하나님의 율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노아 시대에 죄악이 관영 하였다고 기록 되었으며 노아는 당대에 완전한 사람 이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과 동행 하는 것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번제를 드리지 말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이고, 번제로 드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 입니다. 만약에 율법에 따라 번제로 드리지 않았다면 아브라함은 불합격이 되었을 것 입니다. 아브라함은 율법을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드렸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을 이야기 하면서 야고보서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이야기를 써 놓은 이유는 이 행함은 율법에 따른 행함이 아니라는 것과 그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 입니다.

 창세기 22장 7절에서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번제 할 나무와 불은 있는데 어린양은 어디 있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아브라함이 대답하기를 "하나님이 친히 준비 하신다"고 이야기 합니다. 예전에 저는 아브라함이 자식을 죽인다고 직접 이야기 할 수 없어서 우회적으로 이야기 한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야고보서를 보면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어린양을 준비 하실 줄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백세에 사라가 구십에 육신의 생산능력이 끊어진 것을 확실히 알았을 때 하나님께서 은혜로 준 이삭을 낳게하신 하나님이시라면 능히 이삭을 죽여도 살리실 수 있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은 것 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어린양을 분명히 준비 하실 줄 알았기 때문에 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약속으로 얻은 아들이기 때문에 죽지 않을 것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린 것이 순종 입니까? 믿음 입니까? 하나님이 번제로 드리라고 하니까 명령에 순종하여 드렸다고 이야기 합니다. 순종을 이야기 할 때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린 것을 저도 너무도 많이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택함을 받고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여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하고 가지말라 하는 곳에 가고 자식을 준다하니 종 엘리엣셀에게 상속자로 삼겠다하고, 참지 못하여서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는 것과 같이 믿음이 없는 행동을 한 아브라함을 마지막으로 믿음을 시험하고 싶으셨던 하나님께서 이삭을 바치라 명령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11장 17절에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아브라함은 분명히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습니다. 믿음으로 행하여 지는 것이 행함이 있는 믿음 입니다. 야고보서의 행함이 있는 믿음이 율법에서 오는 것이라면 아브라함과 라합을 기록할 이유가 없을 것 입니다.그것은 믿음을 알게 하려고 주신 말씀입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은 율법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에 대해 확신하고 그 약속에 따라 움직여 지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들면 한국은행장이 한국은행으로 오늘 5시까지 오면 1억을 준다고 했을 때 그 말이 믿어지면 갑니다. 하지만 믿어지지 않으면 웃기지 말라 하면서 가지 않을 것입니다. 확실히 믿어지면 아마 택시라도 타고 빨리 갈 것 입니다. 행함이라는 것은 그 사실이 믿어져서 움직여 지는 것을 말합니다. 행함이 없는 것은 안 가버리는 것 입니다. 그것은 안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어떤 약속에 대해서 잘 안 믿어져서 움직여지지 못하는 것을 행함이 없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행함과 행위가 있습니다. 이것은 같은 말이지요. 하지만 야고보서에 기록한 행함은 조금 구분해서 기록했습니다. 행함은 약속에 대해서 움직여 지는 것을 행함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행위는 율법에서 온 것 입니다.

에베소서2장 8-9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하심이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는데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분명히 믿음에서 난 행함과 여기서 말하는 행위는 다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으면 그것은 행함이 있었기에 얻은 것 입니다.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행함은 약속을 믿는 것을 말 합니다. 하지만 에베소서의 행위는 율법을 지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행위와 행함 말은 같은 말이지만 야고보서에서는 분명히 구분을 해서 썼고 그러기에 아브라함과 라합을 예로 들은 것 입니다. 아브라함과 라합을 예로 들은 것은 그것이 율법이 아니고 약속을 믿는 것을 말해 주려고 기록한 것입니다.

 성경에 이와 비슷한 표현인 죄가 있습니다 우리가 짓는 자범죄와 믿지 않으면 지옥가는 죄가 있습니다. 똑같이 죄로 쓰지만 그것은 전혀 다른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자범죄를 지은 사람에게 천국을 못 간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우리 기독교 진리와는 정 반대의 표현이 될 것 입니다.

 야고보서에 기록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 라는 말씀을 우리가 행위를 잘못했을 때 사용한다면 그것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가 아니고 행위를 잘 해야 산다가 될것 입니다. 하지만 믿음은 최선을 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약속이 믿어지면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믿음 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믿어졌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고 했습니다. 믿어졌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율법이 아니고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약속인 것입니다. 그 두 사람은 약속을 믿고 행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최선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느냐 안하느냐? 그 두 가지 선택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믿는 것을 최선을 다할 수가 있습니까?

 최선을 다 해서 믿었는데 안 믿어 진다는 말이 성립 될 수가 있습니까? 믿음은 약속을 믿는 것 입니다. 그 약속을 믿느냐 안 믿느냐 선택 밖에 없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야고보서에 나오는 행함이 없는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아셨을 것 입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영생은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아는 것이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귀한 말씀 입니까? 우리가 무엇을 잘하는 것이 아니고 아는 것이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무엇을 잘하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씀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으려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아니고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천국 가는 것은 나의 가능성은 0%에다 약속을 믿는 믿음 인 것 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천국 갈 가능성은 0%인데 하나님이 약속하신 약속을 믿으니까 천국 가는 능력이 이루어 지는 것 입니다. 

 

사도행전4장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행함이 없는 믿음은 분명히 죽은 믿음 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이 믿어지지 않아서 움직여 지지 않는 것 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육신을 쉬려고 멀리 여행을 떠나서 망중한을 즐기지만 우리는 그 시간에 하나님을 찾고 주의 성전으로 나가 기도하며 주님의 위로를 받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마음이 울적할 때 유행가를 부르면서 그 마음을 다스리려 하지만 우리는 찬송가를 부르는게 더 좋고 그 찬양으로 인하여 많은 기쁨을 누립니다.목회자가 제사장의 후속이라면 죄를 처리하여 주어서 천국가게 하여야 합니다.당신은 죄가 있어서 천국 못간다고 하는 목회자는 제사장 역할을 잘못하는 거짓목자이거나 행함의 믿음을 모르는 목자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아브라함처럼 기생 라합처럼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지고 천국에 갈 것을 확신하여 여리고성이 무너지기 전에 가족을 다 한곳에 모아서 구원받게 한 행함의 믿음을 갖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진정한 행함이라 생각합니다. 행함이 있는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약속이 믿어져서 오늘도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예배처소에 나가고 계신줄 믿습니다. 우리 성도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행함이 있는 구원 받은 주님의 백성인줄 믿습니다.여러분은 보지도 않고 예수님을 믿으니 아브라함보다 더 나은 믿음입니다.이제 바로 행하기를 축복합니다.扈ⓗ

출처 : †예수가좋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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