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믿음

[스크랩] 낙원을 훔친 날강도,도둑놈

끝까지주를위해 2010. 6. 14. 22:09

 낙원을 훔친 날강도,도둑놈

 

오늘은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한 그 날에 일어난 일입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가르치고 그 사실을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약속합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착한 사람은 천국에 가고 악한 사람은 지옥에 들어간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생전에 착한 일을 한 번도 하지 못하고 악만 행하여 사형장에서 죽어간 강도도 낙원에 들어갈 수 있습니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합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복음의 능력은 강도도 구원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주님의 좌우편에 함께 못박힌 두 강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두 강도 중 한 강도는 죽음 직전에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낙원을 허락받았습니다. 이제 십자가상에서 구원받은 강도는 어떤 믿음을 소유하였길래 속히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었는지 살펴보고, 그 믿음을 본받고자 합니다. “낙원을 훔친 도둑”이란 표현이 참으로 좋지요.  정말 도둑은 끝까지 도둑인 것 같습니다.

 

우리 같으면 염치가 없어서도 못할 일을 그 도둑은 거뜬히 해냈고 자신의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목숨이 넘어가는 그 최후의 순간에 그는 함께 죽어 가는 메시아에게서 낙원의 약속을 얻어냈습니다. 도둑은 도둑이라고 칩시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또 무엇입니까? 왜 그 도둑의 청을 그렇게 쉽게 들어 주시는 겁니까? 저는 이 도둑에게 별로 주목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저도 같은 심정을 가지고 이 도둑 혹은 강도에 관한 생각을 깊이 하게 됩니다.

 

1892년 미국의 조지 윌슨이라는 한 남자가 우체국에서 강도 행각을 벌이다 강도와 살인죄로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재판에서 유죄가 입증되어 결국은 교수형을 언도받았습니다. 그러자 주위 친구들이 그를 위해 탄원에 나섰고, 다행히 앤드류 잭슨 대통령으로부터 사면장을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사면됐다는 소식을 접한 윌슨은 죽겠다고 고집하면서 사면을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담당 보안관은 심각한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공식적으로 사면을 받았는데 자기가 원한다고 처형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다시 잭슨 대통령에게 보고했습니다. 당혹스럽기는 대통령도 마찬가지여서 이 사건을 다시 미연방대법원으로 넘겼습니다. 그러자 대법원장 존 마살은 다음과 같이 최종 판결을 내렸습니다.


“사면은 한 장의 종이일 뿐이며, 그 종이의 가치는 전적으로 관계된 사람의 수락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사형 선고를 받은 자가 사면을 거절하는 것은 전례가 드물지만, 거절했다면 그것은 결코 사면이 아닙니다.” 그래서 조지 윌슨은 교수대에서 처형되었으며, 그에게 주어진 사면장은 불과 30여 미터 떨어진 보안관의 책상에서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앤드류 잭슨 대통령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능력과 은총으로 우리에게 사면장을 보내셨습니다. 그 사면장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믿으면,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 담아 두신 놀라운 은혜를 우리에게 아낌없이 베풀어 주십니다. 역사 이래 최고의 횡재를 만난 사람을 꼽으라면 반드시 십자가 상의 강도가 몇 손가락 안에 꼽혀야 할 것입니다. 아니 참으로 무엇이 귀한 것인지를 볼 줄 아는 사람에게라면 의당 첫 번째로 꼽혀야 할 것입니다. 촌각이 급한 상황에서 툭 던진 말 한 마디로 천국을 약속 받은 사람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누구도 예상치 않은 약속을 선언하셨습니다.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23:42-43] 

 그는 하나님의 자비심이라는 틈새를 기어들어가 천국을 훔친 희대의 도둑이었던 것입니다.주석가들은 이 도둑을 이렇게 관찰하고 있습니다. 그 도둑은 ①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②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 ③마땅한 형벌을 달게 받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④무엇보다도 예수를 참되고 실제적인 메시야로 믿고 깊은 신뢰심으로 그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합니다. 

 

 찬송가 가사에도 있지요. 찬송가 519장 2절을 보면 “너는 기억하고 있나 구원받은 강도를 저가 회개하였을 때 낙원 허락 받았다”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이 찬송은 강도의 회개를 그가 구원받은 이유라고 보고 있습니다. 과거에 예수를 위해 열정적으로 일하고 선을 행해도 현재 믿음이 그리스도를 부인하면 과거의 열정은 구원과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천국을 침노하는 도둑이 되라!

요한 크리소스톰(349-407)은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묵상했다. “이 도둑이 드디어 낙원을 훔쳤구나! 이 사람보다 앞선 사람들도 일찍이 아무도 그런 약속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모세를 비롯하여 많은 예언자들과 사도들 가운데에도 그런 약속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이 도둑은 그들을 모두 제치고 앞서고 말았구나! 이 사람의 믿음이 예언자나 사도들보다 더 뛰어난 것이었구나! 이 도둑은 고통을 겪으시는 예수님을 보고도 영광 중에 계시는 것처럼 존경을 드렸구나!. 이 도둑은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시는 모습을 보고도 예수님께서 마치 왕좌에 앉아 계시기라도 하듯이 자신의 소원을 말씀드렸구나!. 이 도둑은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를 받으시는 모습을 보고도 임금님께 애원하듯 은총을 베풀어주시기를 간청했구나!. 오 찬탄해 마지않을 도둑이여! 그대는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을 보고서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였구나!”     http://cafe.daum.net/ilmak

  

 크리소스톰의 눈에 비친 도둑은 ‘낙원을 훔친 죄인!'입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얻지 못했던‘낙원’이란 확답을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의 입을 통해 직접 들은 사람입니다.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를 약속받은 사람, 도대체 그는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사람’이 될 수 있었는가? 십자가의 진실을 보는 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십자가보다 낮은 자리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같은 유대인으로서 십자가를 바라보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오늘의 주인공 ‘한 편 강도’가 한 부류요, ‘유대의 지도자’들이 다른 부류이다.

 

십자가에 달린 주님을 바라보면서 유대의 지도자들은 ‘마땅히 죽어야 할 죄인의 죽음’으로 이해했습니다. 왜 그랬을까? 그들이 기대하는 예수님은 다윗왕과 같은 영광스런 모습으로 오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왕처럼 강력한 능력으로 로마제국에 억압되어 있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의 기대와는 다른 예수님의 모습, 그들의 원함과는 다른 메시야는 필요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기대와 다른 주님의 모습 속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없다는 말인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믿는다는 것을 ‘축복과 인생의 역전’으로만 생각하며 살아가는가? 나의 원함을 따라 하나님이 움직여야 한다고 합니다. ‘나를 위한 하나님’이 필요할 뿐이지, ‘하나님을 위해 내가 변화되는 것’은 결코 원하지는 않습니다. 모세의 말처럼 ‘(신10:13) 너희 행복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지 않느냐’, 신앙인의 참된 행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과정에 있음을 모세는 철저하게 강조하고 있건만, 사람들은 이 모세의 말에 호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나를 위하는 하나님’에게서만 행복을 찾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십자가는 ‘실패한 인생의 저주일 뿐이지, 결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로 비춰질 수 없었습니다’. 그분이 나의 구세주가 되야 되는데 왜? 내마음에 맞지않는 것이 많은 것인가?


 

천국은 침노하는 곳이다. 쳐들어가야한다.

여러분은 어떻게 구원받으셨습니까? 바울은 구원받은 경험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햇빛 보다 밝은 빛을 보았습니다. 그 빛 속에서 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나는 빛 속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루디아는 강가에 기도하러 나갔다가 거기서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어 구원받았습니다. 별스런 체험이나 온 몸이 뜨겁다는 등의 경험을 하지 않았습니다.


 설교의 황태자로 불리는 스펄젼 목사는 어린 시절 한 집사님의 설교를 듣는 중에 구원받았습니다. 그 집사님은 한번도 설교해 본 적이 없는 분이었지만 쌓인 눈에 갇혀서 오지 못한 목사님을 대신해서 설교했습니다. "젊은이, 예수를 바라보게, 예수를 바라보게!" 이 메시지는 스펄젼의 가슴에 강력한 파장을 일으켰고 그 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유명한 강해 설교자 워렌 위어스비 목사님은 구원받기 위해 손을 들지도 않았고, 통로로 걸어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그리스도에게 마음을 열었을 뿐인데 구원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구원받으셨습니까?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죽기 일보 직전에 구원받은 강도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자세한 사실을 알기 위해 우리 모두 다같이 갈보리 산으로 나아가 봅시다.


 해골, 혹은 골고다라는 곳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예수의 좌 우편에는 행악자 둘도 같이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막15:27). 그런데 이 두 강도 중의 하나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요? 그의 훌륭한 믿음을 찾아 교훈을 받도록 합시다. 내가 어느쪽에 있든지 예수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지금 나의 입술의 고백이 주님의 나라에 임할 수 있습니다.扈ⓗ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일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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