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지식

[스크랩] 의문(儀文)에 속한 계명이 무엇인가?

끝까지주를위해 2010. 6. 19. 22:25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를 구원하고 무기력하고 분리된 죽은 생활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인간은 돌비(石碑) 속에 쓰여진 율법을 통해서 우리가 올바른 생활을 해야 할 것은 알고 있으나 실천해 옮길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대표가 되셔서 자기 몸으로 율법의 저주를 받으심으로써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범한 모든 율법에 대한 형벌을 우리 대신 받으셨고, 이로써 주님을 영접하는 모든 사람들을 율법의 요구로부터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거기서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하여 모든 외적으로 나타난 법전들을 근원부터 없애 버리셨습니다. 그 법전이란 것은 십계명이고, 율법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지킬려고 하여도 지킬수없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에베소서 2 장 15절에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폐하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이 무엇인지를 알아 보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육체로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고,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골로새서 2 장 20절에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儀文)에 순종하느냐? 물으십니다.  

 

"법은 오직 불법한 자를 위함이니"(딤전 1:9). 사람들이 내적인 본능으로 율법(법전)을 지키게 되면 외형적인 법은 필요 없게 됩니다(갈 5:23). 인류가 그들의 거짓 신을 좇아 생활했기 때문에 외형적인 율법이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그 거짓 신은 무법의 신이며, 독립된 자아의 신 곧, "악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과 내적으로 연합하여 예정되었던 관계를 회복하는 순간, 외형적인 율법은 그를 위하여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롬 2 : 27]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의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판단치 아니하겠느냐

[롬 2 :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롬 7 :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고후 3 : 6]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고후 3 : 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엡 2 : 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골 2 : 14]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골 2 : 20]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예수님께서도 율법의 전체를 모두 다 이루셨다고 하셨지, 어느 부분만을 이루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율법은 큰 덩어리입니다. 작은 것하나 지키고 다지켰다고 하지못하며, 작은 것하나 안 지키면 다 범한 것입니다. 신약에도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는다는 성경해석은 예수님을 믿지않는 행위이며, 성경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폐하신 것을 다시 살려서 구약으로 돌아가려는 자들입니다.  


의문(儀文)의 법과 심비(心碑)의 법
위와 같은 잘못된 율법관은 의문의 법과 의식법을 같은 차원에서 이해하려는 오해에서 생긴 결과입니다. 혹자들은 의식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 사역으로 이루어졌고, 의문의 법도 역시 폐지되었지만 규범으로서의 의미가 남아 있어 성도들이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의문의 법이란 돌판에 기록된 십계명과 같이 글자로 기록된 외형적인 법도(조문, 법문)를 말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15절에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라는 기록처럼, 의문의 법을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육체로 폐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그 분이 모든 율법을 완성하시고 그대로 이루셨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나 로마서 3장31절에는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성경이 어떻게 된 것입니까? 논리의 앞과 뒤가 맞지 않는 것일까요? 여기에 큰 함정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한 잘못된 해석의 무서운 결과들을 앞의 서술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명쾌한 해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율법을 다시 굳게 세운다는 진정한 의미를 고린도후서 3:3절에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즉, 외형적인 의문의 법은 폐하여졌어도, 심비의 법은 굳게 세운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또 무엇입니까? 다시 말해서 과거의 의문의 법으로는 `살인하지 말라'라는 계명을 이해할 때 단순히 외형적인 살인 행위만 안하면, 율법을 잘 지켰다고 말해 왔으나,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에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만 품어도 살인죄를 범한 것과 같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마 5:21-22) 또 마음에 음욕만 품어도 간음죄를 범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마 5:27) 즉 외형적인 범죄 행위가 아닌 마음속의 죄된 생각만 하여도 밖으로 들어난 범죄 행위와 같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속에 새겨진 이 심비의 법을 어느 누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이 심비의 법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육의 심비에 기록됐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요한일서 4장10-21절에서 이 심비의 법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여 주고 있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 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 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라는 기록대로, 이 심비의 법을 사랑의 계명, 성령의 법, 혹은 그리스도의 법이라고도 합니다.


타락한 인간으로서는 이 심비의 법을 아무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영(성령)이 성도의 마음속에 들어오셔야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어, 육체의 소욕은 없어지고 성령을 쫓아 행하게 되어, 성령의 아홉 가지의 열매를 맺게 되며, 또한 그 사랑을 힘입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형제를 사랑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갈 5:22,요일 3:23) 그러므로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은 성도들에게는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하여 심비의 법이 지켜지게 되는 것입니다.(요 15:16,롬 11:17)


왜냐하면 로마서 13:8-10절에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라는 기록대로,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이 온 율법을 완성하는 것입니다.扈ⓗ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일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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