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배운 희망
조광화 서울예대 극작과 교수
‘남자충동’ 호평 뒤 슬럼프 가족 팽개치고 옥탑방 기거 그 무렵 모든 게 환멸이었다. 손 놓고, 세상이야 어찌 되어가든, 내 삶이야 어디로 가든 버려두고 있었다. 아니, 어서 끝장나길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슬럼프. 1997년 내가 쓰고 연출한 연극 '남자충동'을 끝내고 분에 넘치는 관심을 받았다. 백상연극대상 희곡상·대상, 동아연극상 연출상, 서울연극제 희곡상…. 승승장구할 것만 같던 내 인생이 그즈음 일시에 무너져내렸다. 내게는 딸이 생기고 가족이 생겼지만, 곧 내가 감당 못할 것임을 알았다. 난 핑계를 만들어 가족을 빠져나왔다. 작업실이라며 작은 옥탑방을 얻어 혼자서 기거했다. 그곳에 스스로 유배되어, 난 실패자라는 자괴감과 가족을 버렸다는 죄책감에 무력해졌다. 일도 할 수 없었다. 뜨거운 열정과 확신이 있어야 작품을 만들까 말까인데, 죄책감은 나의 모든 감각과 생각들을 불손하게 여기게 만들었다. 의뢰 들어온 작품마다 이 핑계 저 핑계로 사양하니 점차 의뢰 자체가 없어졌다. 겨우 작품을 만들고 있는 동안 함께 시작한 동료들의 작품이 연달아 발표됐다. 달려가는 동료들에 비해 한참을 뒤처져간다는 불안감이 나를 또 힘들게 했다. 경제적 위축은 나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당시 한 달에 2만원도 안 되던 건강보험료를 일 년 넘게 연체하여 연일 독촉이었다. 한 푼이라도 깎아보자고 전화를 하고선 그들과 악다구니로 소리지르며 싸웠다. 길가다 별것 아닌 일로 멱살잡이를 했다. 그렇게 시비를 걸다 보면 누군가 포악한 상대를 만나 나를 죽도록 때려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그 와중에 딸이 나에게 맡겨졌다. 내 몰골로 아이 옆에 있기가 미안했다. 놀이방에 보냈다. 하지만 해가 지면 어김없이 저녁을 먹이고 씻기고 재워야 했다. 다시 아침이면 깨우고 씻기고 먹이고, 손잡고 바래다줘야 했다. 그러고는 빈방에 혼자 돌아와 뒤척였다. 내 마음 하나 못 다스리는데 이 아이를 어쩌나. 놀이방이 쉬는 날에는 불안한 마음에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아이를 데리고 교외로 나갔다. 단둘이 딸과 놀아줄 마음의 여유가 없어, 지인들을 불러 함께 다녔다. 초라한 소풍은 나름대로 흥겨웠고, 난 자주 자연 속에 있었다. 아이와 또 격의 없는 동료와 함께했던 건강한 자연으로의 소풍은 조금씩 나를 차분하게 만들었다. 그냥 이렇게 사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그러나 어쩌다 딸애 엄마와 통화라도 하게 되면, 모든 수양이 허사였다. 온갖 험한 말을 주고받으며 싸우고 나면, 나는 다시 자책과 자괴와 까닭없는 원망에 심장이 터질 듯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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